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이 있다.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그 혼돈 속에서도 질서와 규칙성을 지배하는 논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최근 여러 구성요소들 간의 다양하고 유기적인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복잡한 집합체를 의미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라는 말도 광범위한 영역에서 쓰이고 있다.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결과에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도 자주 등장한다.
거대한 불확실성 시대가 소리 없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촉발되고 있는 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가파른 고령화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의한 자동화, 지능로봇화의 가속으로 노동집약적 생산 중심의 산업화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퇴장하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대전환기인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전은 인간의 일자리 대부분을 빼앗을 것이며, 이로 인해 대량실업 사태가 올 것이라는, 인공지능이 초래할 어두운 디스토피아(dystopia)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간은 놀이하는 일에 종사하고, 높은 위험이 뒤따르는 일과 반복되는 노동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담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기술의 혁명적 발전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를 보는 관점은 기대와 공포로 엇갈린다. 기술의 혁명적 발전은 인류사회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빠르게 바꿔가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가져올변화는 과거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기에 대부분의3사람들은 불확실성이라 부른다.
한국사회의 또 다른 불확실성은 가파른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1,050만 8,000명에 이를 것이다.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 5,261만 명의 20%를 차지하는,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2000년 6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중이 7%를 넘어서며 고령화 사회에 처음 진입했고, 2017년 6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중이 14%가 되면서 고령사회가 된 바 있다. 2058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40%를 넘어서고, 2067년이 되면 고령인구 비중이 50%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된다. 기대수명은 급격히 늘어나고 생산 가능 인구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구학은 행정학의 기본이다. 인구구조가 변한다는 것은 행정도그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엘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를 통해 독점과 희소성에서 벗어난 미래사회를 예측한 바 있다. 미래사회는 승자독식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함께 창조하고 함께 만드는 공동체적인 특성을 띠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지식 기반 사회로의 전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존립 기반인 공급의 유한성에서 벗어나 무한대의 속도로 지식이 변화·발전하는 무한성의 시대가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과거의 그 어떤 변화보다도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변화 폭도 넓을 것이며, 미래에는 부가가치 창출에서 시간과 공간 및 지식이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스스로 생산해서스스로 소비하는 프로슈머의 등장으로 미래사회는 파편화, 다양화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장은 이익 실현보다는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사회로 바뀔 것이라는 조금 과격한 예측도 제시했다. 카오스 이론이 더 적합한 사회를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13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유토피아(Utopia)와 디스토피아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분명한 것은 칠흑 같은 어둠 저 뒤편에 있는 미래를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신인류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점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우리의 선택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을까? 생산과 노동에 포커스를 맞췄던 舊인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안들은 생산과 노동이라는 철지난 것들이다. 복잡계에 접어든 인류사회가 지금 블랙홀처럼 새로운 시대로 빠져들고 있는 시점인데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구시대의 마지막 열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공존을 위한 명쾌한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미래사회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그 누구도 명쾌하게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혁명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기술의발전은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불균형 성장 모델로 발전해왔다. 사실상 선택과 집중의 성장전략이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패러다임 대부분은 압축 성장·불균형 성장 모델의 결과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사회가 새로운 규범(new normal)과 패러다임으로 재편되고 있는 지금,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환기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갈 방법도 없다. 최대한 빠르게 구시대의 마지막 열차에서 내려야 하는 시점이다.
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대응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생산 중심의 효율성이 중시되는 시대에서 공존을 위한 가치 중심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20세기가 대량생산, 공급자 중심, 표준화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소량생산, 수요자 중심, 다양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변화는 무한경쟁과 효율성의 생산 중심 사회에서 공존과 인간다움의 가치 중시 사회로의 이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년이 된 지방정부는 이와 같은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거대한 전환기를 마주한 지방정부는 관객일까 주인일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옳을까? 그에 대한 답을 문재인 대통령의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사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가 과거에는 지역의 특색이 없는 일선 행정조직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지역주민과 긴밀히 함께하고 있으며, 새롭고 창의적인 사업의 아이디어 뱅크가 되고 있다고 했다.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대전환기에는 지방의 선도적이고 다양한 정책적 대응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정책을 재정립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미국도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하여 위험을 분산하고 種다양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지방자치를 강조하고 있다.
카오스 이론이 필요하다. 기술의 혁명적 발전은 지방정부에게 ICT신기술을 이용한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공공서비스의 개발과 제공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재논의와 지방공무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저출생·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 주민 접점에 있는 지방정부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재고찰이 필요하다. 21세기에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응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주민의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도 비슷비슷한 생각이 아닌 지역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과제1. 기술혁명과 소득격차, 그리고 새로운 빈곤
미래사회는 승자독식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엘빈 토플러의 주장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불평등 담론이 재조명 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자동화와 지능로봇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생산성 측면에서는 놀라운 발전이 기대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독과점과 실업의 문제가 있다. 저급 및 중급의 기술 인력을 대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데이터분석 등 고도의 지적능력이 필요했던 업무들마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며, 결국 빈곤과 노동시장 붕괴 등의 사회적 파장이 상상 이상으로 커져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불평등이 성장의 촉매제라는 자본주의의 오래된 명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소득의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자들 사이에서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되고 있다. 지구사회의 변혁을 예고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에 불을 지폈던 세계경제포럼 클라우스 슈밥 회장조차 급격한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기술의 혁명적 변화에서 핵심은 휴머니즘이 되어야 한다며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해서도 기업들의 과감한 소득격차 해소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의 트렌드를 분석했던『마켓 3.0』의 저자 필립 코틀러 또한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소비를 위축시키며, 소비의 위축은 결국 자본주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부익부 빈익빈, 극단적 양극화. 불평등은 성장의 촉매제일까? 불평등이 경쟁을 유발하고, 경쟁 심화가 성장을 자극할까?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는 성장을 자극시키고 생산성을 높여서 인류의 삶에 기여할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평등의 순기능에 대한 오래된 통념을 재고할 것을 요구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겠지만, 거대했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원인은 카지노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있었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리한 파생상품 남발로 인한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이 미국 발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금융소득(배당·이자)이 노동소득(임금·보너스·스톡옵션)과 사업소득을 강탈해가는 왜곡된 시장구조로 인해 금융위기와 경제대란이 초래되었다는 데 대체적인 동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불평등과 경쟁 심화에 대한 경제단체들의 논조가 바뀌고 있다.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자본주의시스템의 오류이며, 이를 완화하지 못하면 자본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소득 불평등 확대가 성장에 가장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불평등 해소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핵심 요소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불평등 해소와 성장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며 소득 집중 현상은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심화된 소득 양극화는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혁명적 발전은 또 다시 소득 집중 현상을 가속화 할 것이 자명하다. 기술혁명의 수혜자는 이노베이터(innovator), 투자자, 주주와 같은 지적·물적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며, 부의 격차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다. 카지노 자본주의가 소득의 불평등을 확대하고 빈부격차를 확대했다면, 인공지능(AI) 등 지능화 기술 발전은 ‘고용 없는 성장’을 더욱 심화시키고 기존의 일자리들을 급격하게 감소시킬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소득의 양극화 해소는 난제 중의 난제다. 그러나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핵심과제이기도 하다. 2016년도 세계경제포럼 일자리보고서는 2020년도까지 51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 보고서는 기술혁명이 소득격차를 심화시킬 것이고 새로운 빈곤을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기술의 혁명적 발전은 효율성과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며 결국에는 성장 정체와 일자리 급감으로 지속성의 위기를 자초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4위 수준이지만 소득 불평등 확대 속도는 세계 1위이다. 그런데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노동시장을 파괴해서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평등이 심화되면 정치적 불안과 ‘묻지마’ 범죄와 마약 등 사회적 병리가 나타난다. 실질적 소득이 감소하고 자녀와 후손들이 더 나은 삶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는 순간, 그 사회는 실망과 절망에 빠진다. 그 불안감은 파괴적 공격성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심각성은 더욱 크다. 지금까지의 성장 발전 전략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균형 발전전략이었다. 불균형 발전전략은 서울·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거대도시를 낳았고,ICT 신기술 및 지식산업 인프라 또한 서울·수도권 및 거대도시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지역 간의 불평등은 의도적으로 거점지역을 선정하였던,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규모의 경제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동이 자유롭고 신기술 및 지식산업이 중심이 될 21세기에서는‘규모의 경제학’이 효용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집중도는 국민경제의 성과를 일부 세력이 독점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정책의 메커니즘이 소득 재분배나 삶의 질 등으로 시급히 전환되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 특히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시기에 경험하고 있는 부동산급등 등은 소득격차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더욱 크게 할 것이다. 기술혁명과 소득격차, 그리고 새로운 빈곤 문제는 지방에게는 거의 재앙(災殃)수준의 문제이다.
과제2. 늙어가는 대한민국, 소멸하는 지방
대한민국은 늙어가는 중이다. 소멸하는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출산 장려 정책에 노력해 왔는데도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생률이 1.0명 이하인 0.96~0.97명이라는 잠정 집계 결과가 나왔다. 인구가 자연감소 국면에 진입하였고, 2017년부터는 생산인구(15~65세)의 감소가 시작되었다. 정부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국방예산에 버금가는 예산을 지출했지만, 저출생은 확정된 미래로 다가왔다. 지난해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고, 인구구조의 변화는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인구 감소 상황을 기정사실화하고 정책을 준비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인구는 5,163만 명이나 2023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35년에는 4,000만 명 선으로 내려가게 된다.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현재 14%에서 20년 뒤에는 30% 선으로 늘고, 14세 이하 인구는 13% 선에서 10% 이하로 떨어진다. 이보다 시급한 문제는 서울·수도권 인구 집중화 문제이다. 전국 시군구 및 읍면동 10곳 중 4곳은 소멸 위기 지역이며, 소멸 고위험 지역도 89개소에 달한다는 연구발표가 있었다. 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며, 꽃 피는 순서대로지역이 소멸할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는 중이다. 인구 감소는 지역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다. 인구학은 행정의 기본이다. 인구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인구절벽, 인구소멸 시대에 진입한 이상 공공행정의 시급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에 따른 세수 감소, 고령자 복지 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 적자 확대에 대한 대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공급자 위주의 표준화에서 수요자 중심의 다양화로 정책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저출생 해소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늙어가는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정책도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인구구조의 변화와 기술의 혁명적 발전이라는 두 가지 함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년도 별 출생아수 및 출생률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은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을 경험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많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인구문제는 저출생 문제에 앞서 서울·수도권 초집중화 현상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현실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인구 초집중화부터 완화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프랑스는 지역불균형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국토평등위원회(CGET)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방창생법」을 제정하고 도쿄 집중화 완화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이 인구 집중화가 중앙과 지방 모두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두 번째, 유럽과 일본의 고령화 사회 대응 과정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다양한 사회적 대응으로 현명하게 고령화 사회를 준비한 반면, 일본은 공급자 위주의 표준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공급과잉을 유발했고, 공급과수요의 미스매칭으로 디플레이션을 초래하면서 장기간의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이 가장 처음 맞이할 과제는 ‘치매’이다. 치매에 대한 대응 과정을 살펴보자. 치매는 ‘슬픈 병’이다.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차례대로 리셋되는 병이기도 하며, 불행히도 치유보다는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전부인 병이기도 하다. 치매의 문제는 치매가정의 문제로 나타나며,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부정적인 소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치매 환자는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격리·고립되어 생활하게 되고, 결국일상에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드 호그벡(De Hogeweyk)’ 사례는 치매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매우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곳은 중증 치매 노인환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주거공간이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계산하지 않고 가져가도 전혀 상관없다. 극장, 우체국, 헤어숍, 레스토랑, 문화센터 등이 운영되며, 운영진은 전문 의료진과 훈련받은 봉사자들로서 치매환자의 자유와 일상성을 강조하는 케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치매환자들에게 스스로 환자임을 인식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격리하지도 않는다. 환자들은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즐기면서 각자의 생활양식대로 남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일본도 ‘치매마을’을 운영하는 등 치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급격한 고령화 사회 문제가 국가 의제로 제시되고 있다.2006년부터 2015년까지 118조 원의 저출생·고령화 해소를 위한 예산을 배정했고, 200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단위로 저출생·고령화 사회 계획이 진행되는 등 제도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출생아 수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 이쯤에서 그간의 고령화 문제를 바라보던 관점을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이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연한 모든 것들을 출발점에서부터 의심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는 짐일까, 고령사회는 숙명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평균수명의 증가와 출생률 저하라는 두 가지가 고령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보건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연장은 지속될 것이고, 가치관의 변화와 양육부담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는 출생률 저하는 인구구조 변화를 더 가속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늙어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대책들은 적절한가. 이와 같은 새로운 질문에 의한 접근법은 고령화문제가 국가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사회전반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존의 접근법과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적극적인 정책적 대응이 없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고령화는 막을 수 없고, 저출생 문제의 요인은 단순하지 않다. 1960~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불과 십 여 년 전까지 진행되었던 톱다운 방식의 인구정책,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는 가족계획이 대표적으로 실패한 정책이었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어쩌면 가장 창의적인 개념 설계는 시행착오의 출발점에서 얻어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과거와는 다르게 좀 더 심각하게,좀 더 다양한 상상력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말장난이나 수치놀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고로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과제3. 노마디즘nomadism과 체류형 행정
신흥 골목상권 잔혹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용산구 경리단 길, 강남구 가로수 길, 성동구 성수동, 마포구 홍대 앞, 경북 경주시 황리단 길, 부산 해운대구 해리단 길 등 수 년 전까지만 해도 핫플레이스(Hot Place)였던 지역 대부분이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물주들의 과도한 임대료 책정, 젠트리피케이션과 동반된 지역 정체성 상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보편화와 노마디즘 세대의 등장이 더 큰 요인일 수도 있다는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신흥 골목상권의 봄은 태생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핫플레이스의 탄생 자체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문화의 소비였다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소비하고 또 다른 핫플레이스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핫플레이스의 생성과 쇠퇴, 이동의 원인은 생각보다 더 큰 시대변화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년세대들의 노마드(Nomad) 특징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정책에 적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21세기를 흔히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의 시대라고 부른다. 디지털 노마드는 최첨단 디지털 디바이스를 갖추고 여러 곳을 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신 개념 유목민이라고도 하는 이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제약을 받지 않고 일한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이들이 여행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유목하는 인간(Homme Nomade)’이며, 이들은 미래사회의주역으로서 직업, 주거환경, 가정과 국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이들을 ‘유목하는 인간(Homme Nomade)’과는 다른 여행하는 인간 혹은 길 위의 인간이라는 의미로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고 정의하였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1년에 약 10%가 거주지를 바꾼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에도 시민들의 평균 거주 년 수는 약 2.4년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었다. 현대 도시인은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사는‘유목민(Nomade)’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필연적인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인류사에서 유목적인 삶은 문명적인 삶의 반대 개념으로써 무지함과 야만성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렇든 지역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불순함으로 사고하는 정주성에 바탕을 둔 시각으로 인해 유목적인 생활패턴에 따른 정책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기자 출신 편집인 데이비드 굿하트(David Goodhart)는 정주형(定住形) 인간을 뜻하는 ‘Somewheres’와 이동형(移動形) 인간을 지칭하는‘Anywheres’를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정주형 인간은 그 지역을 벗어나면 생계에 위협을 받는 저학력 계층의 사람들이며 이동형 인간들은 어디로 이주해도 생계걱정이 없는 고학력 계층의 사람이라 말한다. 또한 정주형 인간들은 개방적인 환경이 자신의 생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폐쇄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개방형 인간들은 개방적이고 관대한 자유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는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50%는 ‘정주형 인간(Somewheres)’이지만, ‘이동형 인간(Anywheres)’과 그 중간에 위치한 인간(Inbetweeners)도 각각 25% 정도 된다고 주장한다.
청년세대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특징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기성세대들과 다르게 여행하고, 모험하며, 낯선 음식을 먹는 것에 관심이 매우 크다. 과거 기성세대들이 Open border를 주장하면서도 조세피난처(Tax heaven)나 세금이 낮은 Red State로 주소지를 옮기거나 거처를 옮겼다면, 요즘의 청년세대들은 삶의 가치를 중심으로 지역을 선택하며 수시로 지역을 바꾸고 있다. 효율 중심의 신공공관리론에 입각한 행정에서가치 중시의 행정으로, 정주형 정책과 체류형 정책의 투 트랙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수 이효리의 제주 생활은 디지털 노마드를 넘어서 체류형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효리는 기타리스트 이상순과 결혼하여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던 제주도에 신혼집을 짓고 소박한 일상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연주의 라이프스타일로 살고 있으나 제주도에 정착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정착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휴식을 위한 공간이라 답한다. 잠시 체류하고 있다는 답이다. 이와 같은 이효리 이상순 부부의 삶은 거의 신드롬에 가까워진 아이콘이 되었다. 정주형 정책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과제4. 3만 달러 시대와 거버넌스, 일하는 방식의 전환
지방정부의 일하는 방식이 시급하게 바뀔 필요가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다. 2006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처음으로 2만 달러를 넘었으니, 12년 만에 3만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는 국민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선진국 진입의 기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 양극화에 따른 갈등 해소가 미래사회를 위한 최우선 핵심 과제로 등장하는 시기이기도하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는 국민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신호탄이기도하고, 본격적인 갈등사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과거 한국사회는 주기적로 부동산 투기 열풍을 겪어왔던 ‘지대 추구 사회(rentseeking society)’였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 진입은 잉여 투자자금 확보에 따라 거대한 욕망의 전차, 카지노 자본주의가 마지막으로 폭발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사회문제로 나타나 심각한 갈등사회가 될 것이며,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적 힘, 사회적·제도적 혁신에 따라 미래의 운명은 매우 달라질 전망이다.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더 많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문제는사회적 합의라는 전통도 부족하고, 갈등조정을 위한 행정기법에도 매우 미숙한 상황에서 갈등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서구사회는 어떤 방법으로 대처했고, 대응하고 있을까. 유럽은 광범위한 공적, 사적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개방형 조정방식, 다층화 된 거버넌스(multi-level governance)로 접근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행위자가 참여하고 협동적 실행과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 또한 탈근대, 탈냉전, 세계화로 규정되는 문명사적 변동과 당면한 공공문제의 해결을 위해 거버넌스(governance)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거버넌스를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인 것이다. 거버넌스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조정(governing)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다. 책임과 권한을 시민사회와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시민이 주체가 되고 정부는 조력자가 되는, 인간적 가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담론과 소통을 핵심원리로 하는 메커니즘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금까지의 거버넌스는 관 주도형 하향식 모델이 지배적으로 진행되면서 민관협치에 기반한 거버넌스 구축에 실패해 왔다.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하는 실행체계 구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이에 더해 선출직공직자들이 거버넌스 형태로 집행되는 정책성과에 대한 책임을 관료사회에 물어왔고, 관료사회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민사회와 나누는 행위를 침해로 받아들였던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오류를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OECD 10개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에 도달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평균 10년이었다고 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에 도달하는 기간이 5.4년이며, 4만 달러에서 5만달러에 이르는 데에는 4.6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사회가 최소한10년 동안은 더 극심한 갈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버넌스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제5. 에너지 분권과 에너지 세이브 뱅크, 사고의 전환
지방정부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관선시대 지방행정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관선시대 지방행정은 중앙부처에서 떨어지는 업무지침을 집행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민선자치시대의 지방행정은 보다 철학적이고 가치 지향적이어야 하며, 전문적 합리성에 기반 한 능동적 행정이어야 한다.
국가의 기본적 임무는 생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식량과 충분하고 질높은 에너지의 공급에 있다. 이처럼 에너지 문제는 생존의 문제이도 하다. 그런데도 폭염이 지속되면 에너지 빈곤층은 고스란히 무더위를 겪으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에너지 복지 정책이 동절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하절기에는 선풍기를 공급하는 것이 고작이다. 냉풍기를 마음 놓고 켤 수 있는 하절기 에너지바우처 정책은 대단히 미흡한 상황이다. 지난 해 온열환자는 3,500명에 달했고, 4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어떤 이유로 대기업이 사용하는 전기료보다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이 사용하는 전기료가 더 비쌀까?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복지 정책이 겨울철 난방비에만 집중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기업이 쓰고 있는 산업용 전기료는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싸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하는 한전의 적자 대부분은 각종 특례요금 등으로 원가보다 싸게 공급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 때문이라고 한다. 녹색당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20대 대기업 전기료 할인액은 3조 7천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우리사회가 기업이 쓰고 있는 산업용 전기료에 특례를 적용하고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 우리사회에는 산업용 전기료 특혜에 대한 커다란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기업 활동으로 인한 이윤이 에너지빈곤층에게도 골고루 돌아가는 사회적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와 같은 사회적 합의가 유효할까? 매우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연료비 부담이 크고, 부자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가난할수록 에너지 관련 지출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에너지 빈곤층은 불량한 주거 환경에 놓였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에 반해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부자들은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에너지는 생활필수제이다. 따라서 적정 에너지를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분배해 주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외국은 에너지 복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협력, 에너지 공급 기업의 참여를 통해 에너지 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는 ‘저소득 가구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 (LIHEAP,Low-Income Home Energy Assistance Program)’과 집수리 지원 사업인 ‘주택단열 지원 사업 (WAP, Weatherization Assistance Program)’이 있다. 영국은 ‘주택 난방 및 에너지 절약법(Warm Homes and Conservation Act, 2000)’을 근거로 세부적인 정책과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지방 정부 기관들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웜 존(Warm Zone)이나에너지 공급업체가 진행하는 난방 시스템 교체 및 자금 지원 프로그램 웜프런트(Warm Front)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에너지 기본권’을 법령화하고 국가와 에너지 공급기업 및 지자체의 협업으로 ‘에너지연대기금’을 조성해 에너지 복지 정책을 실시한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복지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6년 에너지 기본법 제정을 통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가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해야 할 의무를 법제화하였고, 에너지 복지를 위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복지 정책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정책 전환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겨울철 난방 위주의 지원정책에서 여름철 냉방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 에너지 복지 정책이 주민의 실정과 요구에 맞도록 좀 더 세밀화 되어 운영되어야 한다는 요구, 에너지 복지를 기본권으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재원마련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기, 에너지 공급 기업들이 에너지 복지기금마련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공공정책은 수혜자에게는 사회적 부담을 소외계층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으로서의 혜택을 주는 것이 기본이다. 에너지 분배는 공존을 위해 모두가 보장받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매니페스토본부는 시민과 기업이 에너지 절감을 통해 받은 에코마일리지 탄소 포인트 등을 기부 받아 에너지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는 창구로서의 ‘에너지 세이브 뱅크’ 사업을 지자체와 협력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에코마일리지나 탄소 포인트 코인을 발행하고, 에너지 세이브 뱅크 설립을 통해 에코마일리지나 탄소 포인트 코인을 보유한 기업과 시민들이 스스로 사용처를 지정하여 기부해주는, 이를 통해 에너지 복지와 에너지 나눔 문화 확산을 넘어서 전체 에너지 사용량 절감 유도를 모색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과제6. 낡은 시대의 교육, 이제는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
초등학생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과거에는 대통령, 과학자, 법관, 의사 등이 되겠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요즘 학생들의 장래 희망은 건물주, 공무원, 연예인 등으로 사뭇 다르다. 초등학생 장래희망 설문에1위가 부동산 임대업, 2위가 운동선수, 3위가 유튜버였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를 두고 돈이 유일신의 자리를 차지한 천박한 자본주의에 길들여지다 보니 아이들의 꿈마저 조물주 위의 건물주로 변했다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경기도교육청과 도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에 대한 심층면접(FGI)을 실시한바 있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이유는 학원과 과외를 대여섯 개씩 10시간 이상 다니고 있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귀가하기 때문에, ‘쉬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면 맘껏 놀고 쉴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에 쉬고 싶어서 그것이 장래 희망이 되었다는 답변이었다. 이쯤 되면 부모라는 권위를 내세워 아이의 인생을 미리 정하려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교육복지사업으로서의 문예체 교육은 어떠한가? 한국보건사회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4~6학년 어린이의 40%가 연기자, 가수, 운동선수와 디자이너 등 예술 스포츠 전문가 및 관련 직종을 장래희망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교육복지사업을 진행하는 멘토들은 ‘성적표만 따진다면 김연아와 박지성선수는 문제아였을 것’이라며 ‘제2의 김연아, 박지성’을 길러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지금부터 공부해서 하버드대 갈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열심히 운동해서 김연아, 박지성 될 확률이 높을까? 축구선수로 뛰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뛸 수 있는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유럽에서는 교육복지사업으로써의 문예체 교육을 우리처럼 예술가나 체육인을 길러내는 사업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들의 경우 학생들로 하여금 예술가처럼 풍부한 상상력으로 살아갈 수 있고 체육인과 같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교육이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 기성세대가 미래를 담당할 아이들에게 무슨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산업화 시대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체제였으며, 대량생산 시스템은 동일한 규격과 표준화된 상품을 요구하였다. 교육 또한 동일한 교육과정과 동일한 정답을 암기하는 주입식의 표준화(standardized) 교육이었다. 한국 사회는 표준화 교육을 통해 충실한 추종자(fast follower) 역할을 감당하며 압축성장을 이루었다. 눈부신 발전의 원동력은 암기식, 주입식 표준화 교육이었다. 그러나 교육학자 토드 로즈(Todd Rose)는 저서 『평균의 종말, The end ofaverage』을 통해 과거 근대사회에서 유용했던 암기 위주의 교육방식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교육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한국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에 15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교육 석학 켄 로빈슨(KenRobinson) 교수도 산업화 시대에나 필요했던 획일적인 교육을 비판했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은 학생 각자의 차별화된 재능이 필요한데, 표준화된획일화 교육은 표준을 잘 따라오는 소수 학생들만을 키워내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이라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80년대 활동했던 영국의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1’ 뮤직비디오를 통해 기계 부품을 만드는 것처럼 표준화된 교육정책을 비판했고, 평균적 삶을 거부한 핑크 프로이드의 노랫말에 열광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기성세대가 된 지금 교육이 그 때보다도 더욱 강하게 표준화의 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불확실성 시대이다. 그래서 인재 교육이 핵심이다. 여기서 필요한 인재는 상상력과 창의력, 융합적 사고를 가진 창의적인재이다. 표준화된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미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혁신적 교육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일 또는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는 테크니컬 한 가르침보다는 그것을 왜 하려고 하는지를 반복해서 물어주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과거 부모님들은 대통령, 과학자, 법관, 의사 등이 꿈이라고 말하는 우리들에게 어려운 사람, 딱한 사람들을 돌봐주는 훌륭한 어른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외국의 아이들 교육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 사회에 공헌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 시작이자 끝이라고 한다.
상생과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하여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는 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인구 구조의 변화가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향하게 할 수 있는가이다. 대전환기 혼돈의 위기 속에서 어떤 방법으로 진화와 공존을 이루어 나갈 것인가이다.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혼돈의 시기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위험과 위기를 돌파하려는 현명한 대응과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려는 능동적 전환이 가능한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노력도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지방정부의 국정파트너로서의 패러다임 전환이 정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방정부의 ICT 신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공공서비스 개발과 제공,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재논의와 지방공무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등선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저출생·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패러다임 변화, 주민 접점에 있는 지방정부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재고찰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는 비슷비슷한 생각이 아닌 지역적으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상생과 공존을 위한지방행정의 패러다임 변화는 늦었지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야 하는 시급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