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포트는 2022년에 펴낸 『회복력과 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찰과 제언』에 실린 김현구의 글입니다. 이 사이트에는 원문의 일부만 게시했습니다. 전체 내용은 하단의 PDF파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명: 김현구. 2022. 「기록의 생태계, 웹」.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엮음. 『회복력과 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찰과 제언』.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89-120쪽.)

기록의 미래 

한때 도서관이라고 불렸던 장소 중 일부는 박물관이 되었고 그럴 가치가 없는 곳들은 대부분 전산화되었다. 지금의 도서관은 다른 개념이다. 이곳에 있는 건 책도 논문도, 그 비슷한 자료들도 아니다. 이제 도서관엔 끝없이 늘어섰던 책장 대신 층층 이 쌓인 마인드 접속기가 자리하고 있다.1)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 223쪽.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중단편 부분 대상을 받은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은 어느 미래의 도서관을 소재로 한다. 소설 속의 도서관에는 책 대신 죽은 사람의 정신을 가상화한 ‘마인드’가 저장된다. 전시에 적합하며 소장 가치가 있는 일부 책은 박물관에 옮겨지고 나머지는 모두 전산화되는 대신 전에 없던 새로운 콘텐츠 ‘마인드’가 도서관을 채운다. 책이 없는 도서관을 상상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김초엽 작가는 도서관의 원형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도서관에 책을 대신해 무엇을 놓을 수 있을까? 도서관의 원형을 찾는다면 도서관의 미래 뿐만 아니라 나아가 책의 미래, 정보의 미래, 기록의 미래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 없는 도서관 

책이 있기 전에, 그러니까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사람들은 장터나 광장에서 떠도는 이야기 속에서 정보를 얻었다. 불확실한 정보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당시 풀어야 할 숙제였을 것이다. 탐문을 거듭한 끝에 얻은 정보는 다시금 진위를 살펴야 했고 그렇게 걸러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꾸로 책이 보급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상상하면 책은 위대한 정보 매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동안 활자를 독점하던 종이책은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쏟아져 나온 다양한 디지털기기들에 밀려났다. 약 2,000년 동안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꼽히던 책의 위상은 기껏해야 100년도 되지 않은 인터넷과 통신 기술의 발달로 위기를 맞았다. 아니, 이미 책은 정보를 대표할 수 없게 되었고 도서관 서고에서도 밀려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공공도서관의 좌석 및 도서당 면적 비교

위의 표는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전국 도서관 현황 자료2)국가통계포털. 전국도서관현황.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13&tblId=DT_113_STBL_1028308. 2022-09-14 검색.를 바탕으로 전체 공공도서관의 시설면적과 좌석 수, 소장된 도서 수를 비교한 것이다.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이 시행된 2009년을 기준으로 도서관 시설의 변화 추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도서관의 단위면적당 좌석 수는 2010년 이후 12.99% 감소한 반면, 도서의 수는 44.65% 감소했다. 최근 도서관에 자료 이용 공간 외 서비스 공간이 늘어난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도서관의 주인이 책에서 다른 무엇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책이 없는 도서관은 미래 어느 때를 상상할 필요 없이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연면적 2,500m² 미만의 공공도서관 공간별 소요면적 비율 비교3)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 『공공도서관 건립·운영 매뉴얼』. 20164)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책기획단. 『공공도서관 건립·운영 매뉴얼』. 2019.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하는 공공도서관 건립·운영 매뉴얼에서 권고하는 공공도서관의 공간별 면적 비율에서도 전통적인 서고가 급격히 축소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2,500m² 미만의 도시형 또는 도농복합형 공공도서관의 경우, 불과 3년 사이 자료 이용 공간의 면적이 5.4% 축소되었고 문화교육 목적의 강의실, 동아리실, 다목적 공간 비중이 5% 늘어났다. 책을 대신해 사람 간의 대면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이 늘어난 것이다. 소설 『관내분실』에서 ‘마인드 접속기’가 죽은 사람과 대면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고 본다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도서관의 변화는 나날이 쇠퇴하는 책을 대신할 ‘마인드’를 찾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이 없는 도서관에 무엇을 담고 또 거기서 무엇을 얻게 될까? 이 질문은 곧,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란 무엇이며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도서관’을 정의하기 위해 책이 발명되기 전, 풍문을 쫓고 도서관이 세워지기 전 광장을 떠돌았던 때로 말이다. 책을 의심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도서관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쓰는 책 

책의 제작 및 배포 과정이 웹에서는 거꾸로 벌어질 때가 많다. 책의 서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생각해보고 그 순서가 어떻게 뒤집히는지 비교해보자. 마치 데칼코마니같이 웹은 책을 뒤집어 읽게한다. 영화 <줄리 & 줄리아 (Julie & Julia, 2009)>는 책과 웹의 데칼코마니를 보여준다.

영화는 줄리아 차일드와 줄리 파웰, 두 명의 실존 인물이 책을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줄리아 차일드는 1912년생으로 1961년 프랑스 요리 레시피를 담은 『프랑스 요리의 기술(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을 출간해 미국 가정에 프랑스 요리를 소개한 인물이다. 줄리 파웰은 1973년생으로 2005년 『Julie &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을 출간하고 이 책은 2009년 영화화된다. 영화는 60살이나 차이나는 두 사람의 삶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두 사람이 무척 비슷한 삶을산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프랑스 요리를 했고 책을 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줄리 파웰의 블로그 첫 포스트5)Internet Archive. https://web.archive.org/web/20060206112113/http://blogs.salon.
com/0001399/2002/08/25.html

줄리 파웰이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녀의 블로그 “The Julie/Julia Project”가 알려지면서다. 줄리는 2002년 8월 25일 일요일 저녁,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트를 올린다. 1년간 자신의 작은 아파트 주방에서 524개 프랑스 요리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요리 일기를 포스팅하기 시작한다. 줄리 파웰의 블로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소하고 개인적인 일기는 호감을 얻어 유명해진다. 그리고 책이 나오고 영화까지 만들어진다. 줄리의 블로그를 본 사람들은 그녀의 일상을 응원한다. 줄리가 결심한것은 이미 40여 년 전 줄리아가 정리한 레시피를 재현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미 블로그에 공개된 그녀의 일기가 다시 책으로 나오고 영화로 개봉될 수 있었던 것엔 어떤 비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줄리아 차일드의 책은 집필을 포함해 출판되기까지 9년이 걸렸다. 책이 완성되기까지 다시 쓰기를 반복했고 레시피를 검증하기 위해 테스트도 거듭됐다.6)Insider. “15 things you probably didn’t know about Julia Child”. https://www.insider.com/julia-child-surprising-facts-2020-8.

다행히 책은 성공했고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얻게 된다. 줄리아가 책에 담으려고 했고 독자에게 전하려던 것은 일반 미국 가정에서도 할 수있는 프랑스 요리 레시피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책이 나왔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줄리의 책과 비교하면 출판되는 과정에서 큰 차이가 있다. 줄리는 이미 책을 내기도 전에 독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글에 호감을 보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블로그를 통해 알고 있었다. 줄리의 삶에 있어 커다란 변곡점이 된 블로그. 2002년 8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으로 돌아가 보자. 그녀는 자신이 책을 내리라고 예감했을까? 하지만 줄리아는 책을 내기로 하고 9년간 몰두했다. 만약 줄리아가 줄리의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거꾸로 줄리가 줄리아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책을 낼 수 있었을까? 책에 있는 글이 웹에도 있다. 둘은 비슷한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 쓰는 글과 웹에 쓰는 글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대체로 웹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줄리의 블로그는 해당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된 지금까지도 웹 아카이브에 저장되었다. 하지만 줄리아의 책이 나오기까지 9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역사적인 사건만 기록되는 것일까? 살아남은 기록이 역사가 되는 것일까? 책과 웹은 그렇게 서로 마주보고 거울의 반대편에 서 있다.

정보가 되기까지 

책에는 정제된 정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나아가 책이 곧 정보라고 믿기 쉽다. 이는 지난 2,000년간 자연스럽게 정착된 믿음이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통이다. 우리가 정보라 믿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인 가? 도대체 정보란 무엇인가? 

데이터와 정보 

흔히 데이터와 정보를 구분하지 않고 데이터가 곧 정보이고 정보가 데이터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정의하면, ‘어떤 데이터(자료)를 의도나 목적에 맞게 분석 혹은 가공하여 그 의미를 표현한 것’이 정보이며, 데이터는 거꾸로 ‘어떤 의미나 목적을 포함하지 않고 단순 수집된 원자료’를 말한다.7)김현철. 『정보적 사고에서 인공 지능까지』. 한빛아카데미. 2019. 36쪽 쉽게 구분하자면 컴퓨터가 연산할 수 있게 입력하는 소스는데이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 문자, 이미지, 소리, 동작들은 모두 정보에 속한다.8)같은 책. 38쪽. 사전적인 의미로만 보면 정보는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정보’라고 일컫는 것은 단순한 사실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컴퓨터가 0과 1의 2진수로 연산해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정보화’라고 한다면 인간에게 그 과정은 큰 의미가 없다. 인간 세계에서는 사실과 사실을 입체적으로 연결하고 그사이의 관계를 독창적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정보로서 가치 있다고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데이터와 정보를 혼동하는 이유는 정보를 기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인간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종종 이슈가 되는 학계의 논문 표절 의혹이나 언론의 일명 ‘따옴표 저널리즘’은 전통적으로 믿어온 정보의 가치와 신뢰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사를 쓰는 주체는 기자이지 취재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발화자의 발언은 기 자에 의한 사실 확인이 필요한 주장에 불과하다. 혹여 ‘누군가가 그러한 주장을 했 다는 사실’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발언에 따옴표를 붙여 보도해주기 위해서는 기자와 데스크에 의한 고민과 판단이 요구된다. (중략) 이와 같은 고민을 거치지 않 은 따옴표 속 발화는, 사실과 주장을 분별하고, 세상의 정보에 뉴스 가치를 부여하 여, 사회적으로 상관성 높은 정보를 전달하는 저널리즘 행위의 결과물이 아니다.9)방송기자. 2019-03. [따옴표 저널리즘의 딜레마 ②] 관행이란 이름의 범속함, 그 악의 평범성 

언론학자이며 미디어 비평가인 정준희 교수는 언론의 관행적인 글쓰기를 비판하면서 기자와 데스크가 고민하고 판단한 결과가 곧 뉴스(정보)의 가치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정보의 가치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사실 그 자체도 정보이지만 그사이의 역학 관계를 밝히거나 해석에 도움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정보다. 다만,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누구나 쉽게 사실을 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일에 가까워졌다. 따라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입체적인 사고는 단순한 사실 전달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기술의 발달은 무분별한 인용, 표절이 범람하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더불어 인간만이 생산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정보란 무엇일까?

각주   [ + ]

1.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 223쪽.
2. 국가통계포털. 전국도서관현황.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13&tblId=DT_113_STBL_1028308. 2022-09-14 검색.
3.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 『공공도서관 건립·운영 매뉴얼』. 2016
4.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책기획단. 『공공도서관 건립·운영 매뉴얼』. 2019.
5. Internet Archive. https://web.archive.org/web/20060206112113/http://blogs.salon.
com/0001399/2002/08/25.html
6. Insider. “15 things you probably didn’t know about Julia Child”. https://www.insider.com/julia-child-surprising-facts-2020-8.
7. 김현철. 『정보적 사고에서 인공 지능까지』. 한빛아카데미. 2019. 36쪽
8. 같은 책. 38쪽.
9. 방송기자. 2019-03. [따옴표 저널리즘의 딜레마 ②] 관행이란 이름의 범속함, 그 악의 평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