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포트는 2019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기획하고 엮은 『인간다운 삶, 공존의 시대』에 실린 오현순님의 글입니다(출처명: 오현순. 2019.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엮음. 『인간다운 삶, 공존의 시대』. 코리아 매니페스토, 101-134쪽)

위험사회와 안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른 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물질적 조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고, 현 세대는 역사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존재하는 위험과 사건·사고에 대한 심각성이 인식되고 삶의 질 향상에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안전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세월호참사, 메르스 전염병,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사건, 송파 세 모녀 사망, 통학버스 어린이 사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등을 접하면서 안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였다. 예측 가능한 위험인 경우 재발방지 노력과 안전 불감증 해소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위험과 재난은 우리가 예측했던 원인과 결과를 초월한다. 과거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이제는2~3년 후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이에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졌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에 펴낸 『위험사회』에서 이러한 상황을 경고한 바 있다. 그가 전하는 위험사회의 특징을한 번 살펴보자.

“새로운 종류의 산업화된, 생산하기로 결정된 계산 불가능성과 위협들이 고도 위험 산업의 지구화에 따라 만연되고 있다. 기술적 선택의 능력이 커짐에 따라 그 결과의 계산 불가능성도 커진다.”1)울리히 벡. 홍성태 역.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 새물결. 1997. 57쪽.
“빈곤은 위험을 만연시키고 반대로 부자는 위험으로부터 안전과 자유를 사들일수 있다. 숙련노동자보다 비숙련노동자가 훨씬 더 높은 실업의 위험을 안고 있다. 산업 중심지 근처에 있는 저수입 집단의 값싼 주거지역은 대기, 물, 토양의다양한 오염물질에 영구히 노출되기 십상이다. (중략) 하지만 자연, 건강, 영양등의 위험의 확장에 따라 평등화 효과를 보여준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중략) 위험 사회의 위험지위는 계급지위로 이해될 수 없다.” 2)같은 책. 75~77쪽.
“위험은 지구화 경향을 내장하고 있다. (중략) 먹이사슬은 실제로 지상의 모든 사람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연결시킨다.”3)같은 책. 77~78쪽.

그는 위험을 예기치 못한 불확실한 상황으로 보며,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위험도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후기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과학적·경제적 근대화는 위험 요소를 제거함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새로운 위험의 가능성을 증가시켰고, 따라서 사회는 또 다른 위험에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위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특정 개인과 집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로 확장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농약 사용의 증가, 유전자 변형 생물 등 바이오산업의발달에 따른 잠재적 위해물질의 증가로 환경오염과 식품안전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오늘의 상황은 이러한 후기산업사회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통찰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3월 20일 정부조사단은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발표는 지진을 자연재해로만 알았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살충제 달걀, 유해화학물질 생리대 등과 같이 먹거리와 생활용품에서 위험요소가 발견되면서 ‘케미컬 포비아(ChemicalPhobia: 화학물질 공포증)’가 극심해지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가 짊어져야 할 재앙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피해의 원인과 해결방안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는것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듯,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책임을 지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안전권 보장이라는 것이 단지 당위적·윤리적 차원에서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재난이 단지 천재지변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산업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인해서도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재난은 구조적이고 내재적인 원인에 의해 더 큰 위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압축성장, 자본주의 양극화, 사회 적폐 등 구조적·제도적 원인이 재난의 발생과 확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안전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4)박흥석. 위험증폭사회를 넘어 안전사회로 가는 길. 희망이슈. 희망제작소. 2017. 제26호. 1쪽.
문재인 정부는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책임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책임지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이 있다.

지역마다 위험의 특성이 다른 실정에서, 위험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시대에, 국가의 독점적 관리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방해할 수도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이 중요하고, 지방정부와 지역사회 내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안전의 개념을 짚어 보고, 관련 정책을 살펴본 후, 이에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정책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런데 안전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모든 개념과 영역을 체계적으로 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방자치단체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추진되고 있는 안전 관련 정책을 논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안전이란 무엇인가

안전(safety)의 개념을 정의하기 전에 손상(injury)의 개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손상에 대한 고전적 개념 정의는 “인간의 한계 역치를 초과하는 정도로 신체에 미치는 기계적 힘, 열, 전기, 화학 및 방사선과 같은물리적 요인에 급성 노출되어 야기되는 것”5)조준필·박남수. 지역사회 안전증진 이론과 실제. 아주대학교 지역사회안전증진연구소. 군자출판사. 2008. 1쪽 이다. 일반적으로는 “질병 이외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다치는 것 즉,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사고의 결과로 발생하는 신체나 정신에 미치는 건강의 해로운 결과”6)WHO. Manifesto For Safe Communities. Safety-A Universal Concern And Responsibility For All. Adopted in Stockholm, September 20th 1989 at The First World Conference On Accident And Injury Prevention, Geneva. 1989.로 이해되고 있다. 손상은 190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개인적인 부주의로 인해서이거나 운이 없어서 발생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건강증진에 있어 손상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의 증가 등을 계기로 1930년대 중반 이후 손상의 원인에 개인의 실수뿐만 아니라 기계적 요인 등 역학적 인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검증되었다. 이에 따라 손상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안전은 객관적 차원과 주관적 차원으로 나누어 이해될 수 있다. 객관적 차원에서 안전은 손상의 발생, 안전 행태 등외부적 기분에 의해 측정되는 행태와 환경적 요인들로 설명되고 있다. 주관적 차원에서 안전은 불안감, 안전인식 등 개인이나 지역 사회의 내적느낌이나 인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7)Svanstrom L. Evidence Based Injury Prevention And Safety Promotion : State Of. In Injury Prenention And Control, London. Taylor and Francis ; Klassen T., Mackay J., Moher D. et al., 2000. CommunityBased Injury Prevention Interventrions. The Future Of children, 2000. 10(1). p 83-110; 조준필·박남수. 2008에서 재인용.
이는 안전의 개념이 위험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느낌, 인식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객관적 차원의 손상의 감소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주관적 차원의 불안감, 안전의식 등까지도 포괄하여 안전 개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 차원의 안전에 대한 접근은 보건, 의료, 방재 등 공공기관의 역할과 책임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관적 차원의 안전에 대한 접근은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의식 제고, 지역사회의 협력과 책임감 증대 등에 기여한다. 따라서 손상을 줄이거나 위험을 제거하여 불안전을 감소시킴과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주체의 협력을 통해 신뢰사회를 만들어가는 방향에서 안전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한국에서 안전의 개념과 범위, 정부의 역할 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는 2005년에 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통해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법은 제1조에서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및 안전관리체제를 확립하고, 재난의 예방·대비·대응·복구와 안전문화활동, 그 밖에 재난 및 안전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조에서 이 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확인하고, 모든 국민과 국가·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과 재산보호에 관련된 행위를 할 때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서 정의하는 재난이란 아래 표와 같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서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된다.

(위 표에 대한 부연설명: 그 동안 동법의 재난의 정의에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미세먼지 관련 재난관리 수립ㆍ실행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 2019년 3월에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해를 사회재난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관리체계는 초기 소방법 및 풍수해대책법 등 관련법에 근거하였다가 1990년대 이후 잇따른 대형사고를 계기로 1995년 재난관리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 재난 관련 법령을 통합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대응 관리체계를 확립해 재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제정하였고, 그에 따라 현재의 재난관리체계를 갖추게 되었다.8)원소연·임승빈. 생활안전제고를 위한 지역안전공동체 구축방안 연구. KIPA 연구보고서. 한국행정연구원. 2014. 13쪽.
안전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논의는 2003년 343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2004년에 제정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논의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8년 행정자치부가 행정안전부로 명칭이 바뀌면서 안전의 개념 및 범위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대되었다.
동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연재난 및 사회재난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와 국가기반체계의 마비, 전염병 확산, 미세먼지 등 대다수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재난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대형 피해 외에도 다양한 위협과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생활안전’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생활안전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인과 위해적 환경 변화로부터 시민의 생명, 건강, 재산(신체적, 심리적, 물질적)을 보호하고 대응력을 높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법에서도 생활안전에 대한 법적 근거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제22조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 등에 관한 규정은 생활안전, 교통안전, 산업안전, 시설안전, 범죄안전, 식품안전, 안전취약계층 안전, 그밖에 이에 준하는 대책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작성된 기본계획과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이 작성한 계획을 종합하여 시·도에서 계획을 작성하고 시·도안전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를 확정한다. 시·군·구도 동일한 절차를 거친다.
생활안전의 범위를 이 법에 모두 포함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법에 명시된 범위를 기본으로 하되, 실제 계획 단계에서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안전 분야를 발굴하여 포괄적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주민생활안전 관련 조례

지역 차원의 주민생활안전 관련 조례로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재난 및 안전관리기구 운영(안전관리위원회), 교통안전, 식품안전, 화재안전, 어린이 안전지킴이 운영, 안전도시 관련 조례, 기타 저수지·댐안전관리위원회 관련 조례가 운영 중에 있다. 이주호의 연구에 따르면 안전도시 관련 조례는 2015년 현재 서울시 일부 자치구, 부산 사하구, 대구 동구, 광주 남구, 대전 대덕구, 경기 수원시, 강원 원주시, 강원 횡성군, 충남 아산시, 전남 장흥군, 제주특별자치도 등 14개 자치단체에서 제정, 운영 중에 있다. 조례는 주민생활의 안전증진, 안전문화 형성 등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또한 이들 지역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 경찰, 소방, 단체장, 교육청, 의회, 관련 전문기관 등으로 안전도시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9)이주호. 주민생활 안전을 위한 주민중심의 지역만들기 정책 개선방안. 한국위기관리논집. 2015. 제11호 2권. 313쪽.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주민의 참여와 협력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호는 일본의 안전도시 관련 조례 비교를 통해 이와 관련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일본은 도시안전을 위한 관리적 측면의 고려요소를 중심으로 주민의 자주적인 안전관리 활동 추진을 권장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조치를 통해 이를 지원하는 체계로 전환되었으며, 각종 재난은 물론, 학교, 공공이용시설,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총합적인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10)같은 책. 304~305쪽. 지역자치회 및 마을만들기 관련 협의체를 중심으로 주민이 관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음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생활안전을 위한 현안 과제를 스스로 발견하여 관리하고 필요한 사항을 자치단체에 요구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례가 각 자치단체별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이 조례들은 특히 재난 재해, 화재, 범죄 등 사회 내 위험요인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마련되어 있다.11)같은 책. 315쪽.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개별 프로그램이나 사업형태로 안전정책이 추진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사업을 강구하여 보급하면 주민이 이에 참여하는 수동적 형태의 생활안전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사회의 주도적인 참여와 협력, 통합적인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

주요 안전정책 현황 및 시사점

서해훼리호 침몰(1993. 10), 성수대교 붕괴(1994. 10), 삼풍백화점 붕괴(1995.06), 대구지하철 화재(2003. 02), 세월호 침몰(2014. 04), 메르스 사태(2015. 05)는 한국사회의 대형참사로 큰 상처로 남아 있는 재난이다. 박흥석은 과거 사례들이 원인과 사후 대응에 있어서 매우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무의 방기와 부정부패”, “수습 및 재발방지 조치 실패”, “정보의 폐쇄성”이 바로 그것이다.12)박흥석. 앞의 책. 12~15쪽.
큰 재난이 발생하면 국민을 의식하여 재빠르게 재발방지 조치와 대응방안 마련을 공언하지만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그 모든 것이 흐지부지 되어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보아 왔다. 2017년 10월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주차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3살 어린 아이가 숨을 거두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부모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법제도적, 정책적 대안을 국회 및 관련 시설에 요구했으나, 현재까지 법안은 계류 중이고 관련 시설 주차장의 위험 방지 안내나 시설물 또한 거의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이를 두고 시설 관계자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한 명 더 죽어야 바뀔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공중파를 통해 전파되기도 하였다. 공공의 의무 방기와 재발 방지 조치 실패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한층 높아졌다. 두 달 후 치러진 민선 6기 지방선거에서는 안전 관련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주요 정당의 핵심공약에 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6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정당공약집에 모두 1순위 공약으로 안전 관련 정책이 담겼다.13)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민선 6기 지방선거 정당 공약집. 2014. 자치단체장 후보들도 안전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였고, 당선된 이후에도 국제안전도시 인증이나 안전을 위한 협력 체계 구축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 사업’을 통해서도 지역사회의 안전 강화를 위한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시민의 편의성과 안전 등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스마트시티도 정부 차원에서 중점 추진 중에 있다.

국제안전도시
한국의 안전정책은 대형 자연재해 및 인적재난, 예방과 복구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대형 재난사고의 경우 국가적 차원의 예방, 대응체계가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도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예기치 못한 다양한 위험요소에 노출되어 있고, 이로 인한 피해 역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또한 범죄, 화재, 산업재해, 식품안전, 학교폭력, 기타 안전사고 등 다양한 위험을 제거하고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어지면서 안전도시 구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989년 9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제1회 세계 사고와 손상 예방 학술대회>가 있었다. 그 대회는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하며, 지역사회 안전증진을 위해 ‘safe communit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안전도시’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안전도시는 형평성(Equity), 지역사회의 참여(Community Participation), 국내 및 국제적 참여(national and international participation)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제안전도시 공인은 7가지의 기준에 따라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제 비정부기구인 국제안전도시 공인센터가 주관하여 이루어지며, 5년마다 재공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 현재 국제안전도시로 인증 받은 도시는 406곳이다. 이 가운데 2019년 4월 현재 국내에서 안전도시로 공인된 곳은 제주도 등 19곳이며, 시흥시, 안산시, 평택시 등 13 곳이 공인을 준비 중에 있다.14)경기방송. 2019-04-26. 시흥시, 국제안전도시’ 공인사업 추진.

공인기준은 지역사회의 참여와 협력, 모든 시민의 안전, 사회적 약자의 안전 제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원인 규명과 대안 마련 등 누구나 인정할 만한 보편성을 띠고 있다. 다만 ‘safe community’를 ‘안전도시’로 번역하였을 때 ‘community’에 담긴 정치·사회적 의미를 포괄적으로 담지못하여 안전 정책의 의미와 범위에 대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안전도시는 각종 위험요인으로부터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안전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오해가 따를 수 있다.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 사업

행정안전부는 안심마을 시범사업(2014년),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2015년) 등 주민참여형 지역안전개선 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2016년부터는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중앙정부·지자체·지역사회가 협업하여 지역사회의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행정안전부는 모델 지역을 선정하여 매년 특별교부세 150억 원을 지원하였다. 모델 지역은 지역별 확산 거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곳으로, 2016~2018년 기간 동안 17개 시도별로 1개 시군구를 선정하였다. 사업분야는 교통사고, 범죄예방, 화재, 감염병, 자살 등 5대 집중분야를 중심으로 한다. 지금까지의 재난안전관리가 토목, 건설 등 하드웨어에 치중해 왔다면, 이 사업은 안전인프라 외에도 안전문화 활동을 함께 추진하며, 공공, 시민, 시민단체, 유관 기관이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지역의 위험을 해결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안전문화 활동은 시민의 안전의식 및 안전역량 강화를, 안전 인프라는 시급성을 고려하여 시설 개선을 통해 물리적 안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사업은 지역 안전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사업으로, 지역 안전 협업체계 구축 → 지역안전지수 분석 → 중점개선지구 선정 → 주민공동체 구축 → 주관적 위험분석 → 사업계획 수립→ 사업 시행 → 사업 성과 관리 → 환류 및 지속성 제고 등의 절차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 안전지수 및 지역 통계를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위험과 문제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며 경험하고 있는 시민들의 수요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지역을 다니며 위험하거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지점, 미래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점 등을 지도상에 표시하여 위험지도를 작성하기도 한다. 어린이·노인 안전 취약지역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해 고위험군 연령·계층의 안전 증진에도 힘쓰고 있다.
이 사업은 과거의 탁상행정에서 탈피해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진전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범죄 예방, 자살 방지 분야의 경우 주로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거나 상담, 신고, 단속 등의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범죄 분야 정책으로 여성·어린이 귀갓길 동행, 범죄안전지도 작성, 편의점·약국 등 지키미 집 운영, 어두운 골목길 순찰·감시, 커뮤니티 맵핑(마을지도 제작), 성폭력 대처 및 가정폭력 예방교육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안전 인프라의 경우 범죄예방환경디자인(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 CPTED), 공·폐가 공동 활용 공간 조성, CCTV 설치 등 물리적 환경 개선이 중심이다. 물리적 환경 개선은 범죄 발생의 배경이 되는 사회경제적 구조 문제와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을 희석시킬 수 있다. 또한 외부인을 낯선 사람으로서 항상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여 불안을 조장하고 그들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하여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15)오현순.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에 관한 인문학적 소고. 국토계획. 2014. 제49호 5권. 235-236쪽.
안전을 위한 주민공동체 구축에는 누가 참여할 것인가? 지자체, 유관기관, 안전 관련 시민단체, 주민 대표 조직 등이 참여하지만 지역의 특성에 따라 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해외에서 이주해 온 주민이 많은 지역인 경우 이주민 또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이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가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는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사업 백서에 기록된 활동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러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도 겪었지만,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 순간도 많았습니다. 먼저, 첫해부터 해마다 열리는 다문화체육대회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빈 방을 세놓을 때 외국인이 오면 이유 없이 꺼려졌습니다. 말은 통하지도 않고, 피부색도 너무 낯설었으며, 특히 방을 험하게 사용하고 야반도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문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번의 체육대회를 통해 함께 달리고 힘을 모아 줄다리기도 하며 자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숙해졌습니다. 지금 저희 집 1층 에 파키스탄 부부가 3년째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데, 제가 당번인 날 종종비단카페에 들러 빨래방을 이용하기도 하고, 방범 활동에도 함께 참여하곤 합니다.”(대전 O구 OO동)16)행정안전부·행정연구원.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 사업 백서. 2018.

인간이면 누구나 낯선 것을 경계한다. 낯선 사람의 모습과 행동을 보며 우리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편견에 맞춰 부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시민’들은 낯섦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서려 했다. 경계와 편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겠지만 이주민과 원주민의 상호 이해와 협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주민을 위험의 대상으로 경계하며 물리적 환경 개선에 집중한 사례도 여럿 있다. 아래 인용문도 백서에 기록된 활동 사례의 일부이다.

“관내에 종합대학인 OO대학교가 위치하여 외국인 유학생 및 외국인근로자 등 지역 외 주민이 상당수 거주하여 주인의식 결여 및 지역민과의 교류도 거의 없어 범죄의 위험성을 느끼는 상황이었습니다.”(전북 OO군)
“OO동의 원룸밀집지역 또한 젊은 학생들과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어둡고 범죄에 취약한 지역이기에 범죄예방에 특화하여 셉테드를 조성하였습니다.”(부산 O구)17)같은 책.

이 사례를 읽다 보면 외국인을 예비적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안감 해소를 위한 노력은 순찰 등 안전지킴이 활동에만 그치고 있다. 이주민을 회피하거나 그들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데서 벗어나, 그들을 우리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보는 인식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이 사업에 대한 발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18)같은 책. 우선, 사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담당공무원의 역량에 따라 사업의 방식과 성과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협력관계 구축여건도 다르다. 지원에 적극적인 광역지자체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그에 따라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초자치단체도 있다. 따라서 법제도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지역안전지수는 시·도별 및 시·군·구별로 지역의 안전을 진단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더 작은 지역 단위, 즉 읍면동, 마을/지구 단위의 객관적 현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주민공동체의 지속적 활동을 위한 지원과 그 자생적 운영 구조를 확보할 수 있는 체계의 필요성 또한 제시했다.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는 “도시에 ICT,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접목하여 각종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도시모델”로 정의할 수 있다.19)이정희. 스마트시티 정책 추진방향. 국토. 2018. 제445호. 7쪽. 한국의 스마트시티 역사는 2003년 유비쿼터스 시티(U-City)에서 출발했다. U-City는 시민이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편리하게 도시의 정보를 제공받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 경기도 동탄 등 주로 신도시를 중심으로 시범도시를 구축하여 전국 52개 지자체에서 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U-City는 기존의 노후화된 도심에서는 추진이 어렵고 시민의 체감도가 낮다는 한계가 있었고, 따라서 다른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해외에서 이미 추진하고 있던 스마트시티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기술 중심과 공공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첨단 과학 기술을 접목하여 교통, 안전, 에너지, 복지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U-City 사업과는 일정 부분 차이가 있다.
스마트시티는 다양한 참여주체의 거버넌스 구축,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혁신산업을 창출하는 공간 조성이라는 기능이 접목되었다. 이에 따라 2017년 기존 구축 중심의 「유비쿼터스도시의 건설 등에 관한 법률」이 「스마트도시의 건설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된다.20)같은 책. 11쪽. 여기에는 민간의 참여와 역할 증대를 위해 팀 챌린지, 리빙랩, 스마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도시재생, 국가 시범도시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21)김수일. 스마트시티의 도시건설적 접근 변화. 2018. 국토. 제445호. 40쪽.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사회문제를 민관이 함께 해결해 나가는 스마트시티는 문제해결의 효과성을 높이고 혁신산업의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하지만 큰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보니 민간 투자 없이는 추진이 거의 불가능하다. 공공서비스에 민간 투자방식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높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그 성공적 추진을 전망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시티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든 부처의 정책 영역이 협력해야 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낮춰야 한다. 정책 영역 간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할지가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편리성과 안전성을 위해 정보통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한 통합관제시스템의 이면에는 해킹, 개인정보 노출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 특히 개인정보 노출과 프라이버시 침해가 발생할 경우, 애초에 자신을 향한 감시·심문 등을 가능하게 하며 불안감에 의한 자발적 동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울리히 벡은 불안이 삶의 느낌을 규정하고,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전체주의가 등장하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하여 우리가 그토록 양도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 온 자유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또한 ‘파놉티콘(일망 감시 장치)’을 통해 권력이 인간과 신체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처벌하는 감옥과 감시체제를 정면에서 비판한다. 개인적 ‘자율성의 위협’과 ‘안전사회를 위한 불가피한 장치’라는 쟁점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할 지 지혜와 혜안이 필요하다.
스마트시티로 인한 편리성의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불능력에 따라 정보통신기술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과 그것으로부터 배제되는 사람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두운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기적으로 스마트시티를 구축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보다 더 평등한 미래도시가 아닌 새로운 불평등이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안전정책의 방향

안전은 효율이 아닌 생명 가치가 우선

한국이 걸어 온 압축적 근대화의 이면에는 빈곤, 차별, 환경오염이 존재했다. 성장과 효율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용납되었고, 기업의 성장과 이익을 위해 안전에 대한 소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인식이 산업현장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도록 했다. 특히 위험의 외주화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낮은 노동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위험의 외주화 논란에 불을 지핀 사건은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사망 사고였다. 당시 19세였던 젊은 노동자는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다 들어오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지난해 12월 11일에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까운 노동자의 죽음이 있었다.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운송설비에서 작업 도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씨는 입사한지 석 달도 안 된 24살의 청년이었다.

안전정책은 시민의 생명을 지키고 존중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안정정책은 비용과 효율이 아닌 생명과 인권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전 예방부터 회복단계까지 안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예산낭비로 바라보는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일부 언론은 참사에 대한 원인 분석보다는 천문학적 인양 비용을 운운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당시 세월호 인양 업체를 선정하는 심사에서 한 외국 업체는 프리젠테이션에 “차디찬 바다 속에 아직 당신의 나라 국민 9명이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적었다.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것을 외면했다. 유일한 관심은 막대한 비용과 정치적 유·불리였다. 창피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의무의 방기와 부정부패, 재발방지 조치의 실패, 정보의 폐쇄성 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면 곧 시들해졌다. 그런 이유로 사회적 재난이 반복되었다. 그 뿐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성과를 지우기 위해 애써 만들어 놓은 안전정책을 폐지하고, 그에 따라 정책이 퇴보되는 경우도 많았다.

생명과 인권은 재난이 발생한 이후 회복 단계에서도 중요한 가치로 반영되어야 한다.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공동체의 기능을 복원하기 위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를 지원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씨가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당시 학생 20명을 구한 김동수씨는 두 번에 걸쳐 자해 시도를 하였다. 유족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고,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고통은 배가되고 있다. 지난 4월 강원도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산불은 주택과 축사를 가리지 않고 집어삼켰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축구경기장 3,970개를 합친 면적에 이르는 곳이 초토화됐다. 시민들은 망연자실했고, 그들이 경험한 산불에 대한 공포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지 모른다. 따라서 위협과 위해를 당한 이후의 육체적·물리적 복구와 회복 외에도 정신적 건강과 심리적 회복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지금도 각 지자체에서는 재난 심리회복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으로 복귀하여 예전처럼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안전정책은 큰 분기점을 맞이하였다. 참사는 물질만능주의, 경쟁과 성장이라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첨단기술이 발전하고 안전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어도 생명존중의 가치가 담겨 있지 않으면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요원하다.
안전한 사회는 기술, 효율, 물질을 넘어 생명, 인권, 참여, 연대, 신뢰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예방과 완화’ 차원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으로 가야 더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대 범죄로부터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범죄예방 차원의 도덕적·윤리적 교육이나 환경적·물리적 개선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도 병행되어야 한다. 범죄의 발생에 사회경제적 구조와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도 주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안전의 공공성 강화

대한민국 헌법 34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고,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헌법에 담아야할 기본권 1위로 국민들은 안전권(right to safety)을 뽑았고, 중앙일보에서 진행한 같은 내용의 여론조사에서도 생명권에 이어 두 번째로 안전권이 높게 나왔다. 위험·재난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고 시민 모두의 공동 이익과도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시민의 생명 존중과 공공의 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안전에 관한 법제도, 정책,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와 행동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사회적 약자의 안전 문제이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하고 우리의 생명을 위협한다. 사회적 약자는 이러한 위협에 더욱 많이 노출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이지만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욱 혹독하다. 미세먼지는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직면한 문제이지만, 이를 걸러내는 공기청정기는 지불능력을 가져야 살 수 있다. 이처럼 경제적 상황, 신체적 조건 등에 따라 위험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재난의 예방, 대비, 복구에 있어서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전국의 재난 피해자를 대상으로 ‘삶의 변화 추적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가 KBS 뉴스22)KBS 뉴스. 2019-04-23.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지만…약자에겐 더 가혹. 를 통해 방영됐다. 이 조사는 2012년 태풍 ‘볼라벤’부터 2015년 의정부 주택화재, 2016년 대구 서문시장 화재, 2017년 포항 지진 등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사회재난의 피해자 가운데 2,311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 가운데 노령층인 만 65세 이상 인구가 40.1%였다. 전체 인구 가운데 노령인구 비율이 14.8%인 것을 감안하면 노령층이 피해를 입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피해자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는 717명(43.2%)이었다. 전체 인구 중 수급자 비율이 3.1%인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약자에게서 더 많은 피해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재난 이후의 질병과 상해 완치율에서도 노령층과 저소득층이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진료를 제 때 받지 못하는 이유로 노령층은 의료기관과의 먼 거리를, 저소득층은 경제적인 문제를 꼽았다. 우울과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도 노령층이 젊은층보다 1.3~1.6배 높았다. 가구별 소득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우울,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소득계층별로 더 많은 차이를 나타냈다.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의 가구는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가진 피해자보다 피해 정도가 3~5배 높았다. 이 조사에서 노령층의 재난 피해자가 바라는 서비스를 묻는 질문에 ‘정기적 안전 확인 방문’이 1위로 꼽혔다. 다음으로 ‘재난 정보 및 지원 정보 전달’, ‘방문 의료’, ‘주거지 안정화’, ‘정서 안전을 위한 방문 상담’, ‘생계활동 지원’ 순으로 나타났다.
재난 예방, 대비, 회복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은 사회적 약자의 안전성 보장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인,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특성을 배려한 환경 설계와 정보 제공, 교육, 안전관리 공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23)서울연구원. 서울형 안전도시 모델 모색. Working Paper. 2015. 39쪽 재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는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정서적 안정을 위한 관심과 지지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지역적 위험특성을 고려한 안전정책

한국사회가 고도화·첨단화되어가고 도시가 고밀집화·노후화되어 갈수록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재난은 규모 면에서 대형화되고 있고, 유형 면에서 다양화·복잡화되고 있다.24)유재욱. 4차산업과 국민안전. 안전충북포커스, 충청북도재난안전연구센터. 2017. 제2호. 9쪽 도시공간의 노후화·고층화·지화화는 예기치 못한 안전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개인화와 익명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인구의 감소와 1인 가구의 증가, 초고령화 현상에 어떤 위험 요소가 내포되어 있을 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도시에서보다 농촌에서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은 예측 가능하다. 빈 집이 늘어나고 영농을 포기한 논밭이 속출하며 마을이 소멸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기후변화에 의하여 예기치 못한 폭우, 폭설, 한파, 폭염, 가뭄 등 다양한 재난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4일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은 양간지풍과 강풍 외에도, 기후온난화로 인한 고온건조 등의 원인으로 피해가 확산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자연재난 외에도 대형 교통사고, 화재, 시설물 붕괴, 오염물질 누출, 침구류의 라돈 검출 등 사회재난 발생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또한 고도성장에 따른 새로운 재난환경 출현이 그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 일어난 재해와 재난을 기준으로 한 대응으로는 새로운 유형의 재해와 재난에 대처하기 어렵다. 특히 예방-대비-대응-복구의 틀에 묶인 이전의 재난 관리는 전혀 예기치 못하는 환경 변화와 재난의 출현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이승수는 일어날 재난에 대한 계량화된 분석과 대비책 수립이 아니라 어떤 재난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과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25)이승수. 미래재난에 대비한 인식전환의 필요성. 안전충청포커스. 충청북도재난안전연구센터. 2017. 제2호. 11~14쪽. 재난 예측력을 강화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의 여건과 환경 파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5년부터 행정안전부에서는 지역안전지수를 교통사고, 화재, 범죄, 생활안전, 자살, 감염병, 자연재해 등 7개 분야별로 매년 공개하고 있다. 지역의 안전수준을 제대로 진단하고 과학적으로 개선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발생한 사건과 사망자 수를 바탕으로 사후적으로 안전을 진단하고 있고, 발생한 적이 없는 재난이나 불확실하지만 발생가능성이 있는 위험에 대한 진단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재난에 대해 국가 차원의 위험성 평가를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안전지수가 시·도 및 시·군·구에 한하여 분석되어 공개되는데, 읍·면·동 및 마을·지구 등 보다 작은 지역 단위의 통계 또한 필요하다. 마을 단위의 지리적·공간적·인적 규모와 특성, 재해 유형별 지역의 취약성 정도와 관련 시설, 경제적·사회적 특성, 위험시설과 기반시설, 인구집중시설의 종류와 특징을 고려하여 과학적인 재난 예측과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안전시민성, 시민주도와 안전자치 , 협력체계 구축

“딕슨은 자존감이 낮아. 화가 너무 많아. 증오심이 크면 형사가 될 수 없어. 경찰이 너의 꿈이잖아. 형사가 되려면 사랑이 필요해. 침착함에서 사랑이 나와. 총도 필요 없고, 증오도 필요 없어. 증오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 월러비 경찰서장이 딕슨 경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딸이 살해되었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고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상황에 처한 밀드레드는 마을 외곽의 3개의 대형 광고판에 경찰서장 월러비를 비하하는 글을 포함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기 위한 메시지를 싣는다. 마을에서 평판이 좋은 월러비 서장에 대한 도전에 마을 사람들은 밀드레드를 멀리하고, 서장의 부하직원이었던 경찰관 딕슨은 그녀와 친한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광고판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딕슨이 범인이라고 직감한 밀드레드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경찰서에 불을 지른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은 것이다. 하지만 월러비 서장이 죽기 전 작성한 편지를 읽은 딕슨과 광고판에 불을 지른 범인이 딕슨이 아닌 것을 알게 된 밀드레드는 무언의 화해를 한다. 그들은 분노가 더 큰 분노를 야기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 다른 모습과 생각을 존중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즉 딸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함께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제야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이 영화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필자에게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주제는 ‘연대’이다. 광고판을 다시 정비할 비용을 지불한 것은 경찰서장이었고, 그녀는 서장이 죽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광고판을 새롭게 제작할 때 밀드레드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은 마을에서 차별과 혐오를 받아왔던 인종적·신체적 소수자였다. 경찰관 딕슨 또한 멕시코 이민자였다.
이번 강원 산불의 경우를 보면, 정부의 빠른 위기 대응으로 더 큰 피해를 막았지만,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는 시민들의 역할이 컸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이웃에게 연락을 취하며 함께 피신한 주민들과 마을 이장, 산불의 위험을 알리고 구조활동을 한 오토바이 배달원, 모두가 재난 상황에서 위협을 무릅쓴 숨은 의인들이다.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성만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안전시민성(safe civility)’을 키우고 대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안전시민성은 비단 자연재난에서만 주효한 것은 아니다. 2015년 현재 외국인은 136만 명으로 2010년 보다 41.6% 증가하였고, 이주민의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경계하거나 회피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서로 대화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며, 안전문제에 대해 함께 숙의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 갈 때, 비로소 과도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전의 사례처럼 이주민과의 다양한 소통과 협력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재정적·공간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안전과 위험의 문제는 지역별로 상이하고 복잡하여 정부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과거에는 없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부를 안전 문제의 유일한 해결 주체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울리히 벡은 한 층 더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바로 전문가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위험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는 산업사회를 반성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성찰적 근대화’를 제시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목표가 바로 과학자 집단과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생산 과정을 민주화하여 대중의 참여와 개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소위 전문가집단이 위험에 관한 정보와 관리를 독점함으로써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지난해 포항 지진이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지열발전소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조사결과를 보면서, 시민의 안전이 국가와 기업 및 전문가의 손에만 맡겨질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우리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안전대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질 수 있게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시민주도형 안전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주도형 안전정책의 수단으로 ‘리빙랩(living lab : 생활실험실)’이 주목받고 있다. 리빙랩은 “사용자 참여와 혁신공동체 구성을 자와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개방형 연구개발 추진 체계”로 정의할 수 있다.(프레시안. 2019-04-22. 리빙 랩이 대세다!)) 이것은 단순히 사용자의 행동패턴이나 선호를 관찰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아니며, 제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능동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넘어선다. 리빙랩은 스스로 사회 규범과 문화를 바꾸고 제도와 인프라의 변화를 촉구하는 거대한 시스템 변화의 발화점이 될 수 있으며,26)프레시안. 같은 기사. 정치학적으로는 참여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안전정책과 관련한 한국의 리빙랩 실험 1호는 대전 유성구의 ‘건너유 프로젝트’이다. 유성구 갑천은 홍수 때 마다 자주 범람을 하는 지역으로 갑자기 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모르고 건너다가 실족사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갑천 범람 여부를 사전에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였다. 일상의 문제를 시민 스스로 집단지성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27)배민기. 시민주도형 기후·안전정책으로의 전환 : 리빙랩을 중심으로. 충북연구원. 2018. 안전 문제 외에도 주차 문제, 에너지 문제, 도시 소음과 쓰레기 문제 등 다양한 도시 문제의 해법을 리빙랩을 통해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IT기술을 활용해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별로 자연적·사회적 특성이 다양한 조건에서 지역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민이 직접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안전 대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시민참여는 시민이 스스로 위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대응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숙의와 공론 과정을 거치며 생명과 안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대처방법을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자체의 안전관리 책임성을 강화하고 자율적인 개선을 유도하기 위하여 지역사회의 안전 협력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소방, 경찰, 교육청, 지자체 및 지방의회 등 지원행정 시스템과 지역의 민간단체, 기업간의 조직적인 연결이 필요한 것이다. 지역 스스로 안전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행정적인 차원에서 지방분권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있는 안전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여 안전자치가 이루어져야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안전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다. 지방분권이 물론 절대적 해답일 수는 없다. 소방, 의료, 복지 등의 안전 인프라는 지역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교통, 범죄, 기타 생활안전 등 지역사회에서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효율적인 분야는 안전자치로 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안전정보 개방 및 공유

재난 발생 시 정보의 투명하고 충분한 제공은 구조를 위한 효과적인 자원 투입을 가능케 하며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데에도 결정적이다. 또한 정확한 정보의 제공이 잠재적 피해자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의 공개는 매우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전원 구조 오보’로 인해 초기 구조작업에 엄청난 혼선을 초래하였다. 구조에 나선 인원을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 발표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실망과 분노는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2015년에 발생한 ‘메르스’ 사태는 감염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감염경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방역조치도 미흡하였고, 이 때문에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안전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소극적일까?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손해, 재산가치 하락 등의 이유를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로 인해 시민이 재해와 재난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안전의식을 내재화하고 막연한 불안심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정보의 개방과 공유가 필요하다.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재해와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어서도 정보의 공개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스마트시티를 인문(人文)하라

스마트시티는 시민에게 더 많은 혜택과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스마트시티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도시이다.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저성장 시기에 도시 내 지역, 계층 간 불평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무인화 과정은 산업 구조 조정과 대규모 실직으로 인한 소득격차 심화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사회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동시에 무인화, 스마트화되는 도시서비스는 이용요금이 비싸므로 저소득층의 이용을 어렵게 하여 혜택으로부터의 배제를 낳을 수 있다.28)이용우. 도시의 여건 변화와 정책과제. 국토. 2017. 제423호. 18쪽.
지불능력이 없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혜택의 배제와 불균형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첨단화된 저성장기 도시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가 극대화되는 도시,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없이 창업할 수 있는 도시, 걸으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도시, 공동체가 살아나 인간미와 다양성이 넘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29)김수일. 스마트시티의 도시건설적 접근 변화. 국토. 2018. 제445호. 41쪽. 결국 스마트 안전도시도 기술과 인문의 조화가 중요하다.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즉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가 기술의 혜택으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의료, 주거, 이동 수단 등의 공공서비스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지역사회의 안전과 회복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편리성 추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또한 필요하다.

분절화가 아닌 통합적 관리

국내에서 안전 관련 조례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안전관리위원회 운영과 그 외 교통, 식품 안전, 화재 안전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주호는 “교통안전, 화재 안전, 학교 안전, 어린이 안전, 취약계층 안전, 여성의 안전 등에 대한 정책을 폭넓게 고려하고 있으나 이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이기 보다는 개별 프로그램이나 사업으로서 전개되는 양상에 있으며, 일선공무원들 또한 단순한 관리 측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30)이주호. 앞의 책. 317쪽.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지방자치단체의 효율적이고 원활한 안전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지자체마다 유사한 형태의 개별 조례가 아닌 통합적으로 생활안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재정적·행정적 지원체계와 이에 부응하는 조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31)이주호. 앞의 책. 317쪽. 또한 현재 지자체에서 수립하고 있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안전관리계획이 개별 정책으로 방향을 세우고 관리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정책 방향, 기준, 전략을 제시하고 풍수해 저감종합계획, 도시기본계획, 환경보전계획, 재난안전 대응 매뉴얼 등 안전 관련 유관 계획과 정합성, 일관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32)김명수. 안전도시 구현을 위한 다섯 가지 정책방안. 국토정책 Brief. 2017. 제630호. 3쪽.
앞서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사업의 경우 법적 근거가 미비함에 따라 지역별 재정적 여건과 공무원의 의지에 따라 정책의 지속성이 좌우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역별 균형을 고려한 안전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와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만 국제안전도시,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그 외 지자체 자체적으로 수립한 정책들이 혼재되어 있어 정책 방향의 혼선, 중복 예산 지원, 효율적 관리의 미흡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개별 정책 또는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통합적이고 일관된 정책 방향과 시스템 아래에서 안전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분절적 관리가 아닌 통합적 추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당 부서와 유관 기관의 협력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사회에서 협력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대중교통의 발달로 생활권이 광역화되어가고 있고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지역 간 경계는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은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도시계획, 안전정책은 지자체의 행정단위로 분절화되어 칸막이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 간, 도농 간 이분법적 접근과 각자도생은 ‘풍선효과’를 낳기도 하고 효율적인 공공서비스 공급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인접 도시 간, 도시와 농촌 간, 부서 간, 그리고 다양한 주체 간 협력을 통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 ]

1. 울리히 벡. 홍성태 역.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 새물결. 1997. 57쪽.
2. 같은 책. 75~77쪽.
3. 같은 책. 77~78쪽.
4. 박흥석. 위험증폭사회를 넘어 안전사회로 가는 길. 희망이슈. 희망제작소. 2017. 제26호. 1쪽.
5. 조준필·박남수. 지역사회 안전증진 이론과 실제. 아주대학교 지역사회안전증진연구소. 군자출판사. 2008. 1쪽
6. WHO. Manifesto For Safe Communities. Safety-A Universal Concern And Responsibility For All. Adopted in Stockholm, September 20th 1989 at The First World Conference On Accident And Injury Prevention, Geneva. 1989.
7. Svanstrom L. Evidence Based Injury Prevention And Safety Promotion : State Of. In Injury Prenention And Control, London. Taylor and Francis ; Klassen T., Mackay J., Moher D. et al., 2000. CommunityBased Injury Prevention Interventrions. The Future Of children, 2000. 10(1). p 83-110; 조준필·박남수. 2008에서 재인용.
8. 원소연·임승빈. 생활안전제고를 위한 지역안전공동체 구축방안 연구. KIPA 연구보고서. 한국행정연구원. 2014. 13쪽.
9. 이주호. 주민생활 안전을 위한 주민중심의 지역만들기 정책 개선방안. 한국위기관리논집. 2015. 제11호 2권. 313쪽.
10. 같은 책. 304~305쪽.
11. 같은 책. 315쪽.
12. 박흥석. 앞의 책. 12~15쪽.
13.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민선 6기 지방선거 정당 공약집. 2014.
14. 경기방송. 2019-04-26. 시흥시, 국제안전도시’ 공인사업 추진.
15. 오현순.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에 관한 인문학적 소고. 국토계획. 2014. 제49호 5권. 235-236쪽.
16. 행정안전부·행정연구원.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 사업 백서. 2018.
17, 18. 같은 책.
19. 이정희. 스마트시티 정책 추진방향. 국토. 2018. 제445호. 7쪽.
20. 같은 책. 11쪽.
21. 김수일. 스마트시티의 도시건설적 접근 변화. 2018. 국토. 제445호. 40쪽.
22. KBS 뉴스. 2019-04-23.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지만…약자에겐 더 가혹.
23. 서울연구원. 서울형 안전도시 모델 모색. Working Paper. 2015. 39쪽
24. 유재욱. 4차산업과 국민안전. 안전충북포커스, 충청북도재난안전연구센터. 2017. 제2호. 9쪽
25. 이승수. 미래재난에 대비한 인식전환의 필요성. 안전충청포커스. 충청북도재난안전연구센터. 2017. 제2호. 11~14쪽.
26. 프레시안. 같은 기사.
27. 배민기. 시민주도형 기후·안전정책으로의 전환 : 리빙랩을 중심으로. 충북연구원. 2018.
28. 이용우. 도시의 여건 변화와 정책과제. 국토. 2017. 제423호. 18쪽.
29. 김수일. 스마트시티의 도시건설적 접근 변화. 국토. 2018. 제445호. 41쪽.
30, 31. 이주호. 앞의 책. 317쪽.
32. 김명수. 안전도시 구현을 위한 다섯 가지 정책방안. 국토정책 Brief. 2017. 제630호. 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