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6년 3월 발간된 『함께 회복력: 위기의 시대, 공존을 설계하다』에 수록된 이민주 저자의 기고문입니다. 인용 시에는 아래 서식에 맞춰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출처명: 이민주. 2026. 「도시는 누구에게나 안전한가?: 재난 불평등이 드러낸 도시의 격차」. 이민주·이윤석·배보람·진상현·이현성·오현순. 『함께 회복력: 위기의 시대, 공존을 설계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엮음.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13-35쪽.)

목차

  1. 들어가며: 반지하에서 본 불평등의 풍경
  2. 재난이란 무엇인가: 법이 정의하는 안전의 경계
  3.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뉴올리언스와 서울, 그리고 비인간 동물들
  4. 나가며: 포용적 회복력을 향하여

1. 들어가며: 반지하에서 본 불평등의 풍경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가 철저한 ‘계급 사회’임을 공간적 묘사를 통해 폭로한다. 박 사장의 집은 언덕 위의 부촌에 위치하며, 햇빛이 잘 비추고 비가 오면 운치 있는 풍경을 선사한다. 기택네는 저지대의 땅과 지하의 경계가 되는 반지하에 산다. 햇빛이 잘 들지 않고, 비가 오면 위에서 흘러내린 빗물과 오물이 모인다. 이 영화에서 계급의 차이는 여러 장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지만, 이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의 대저택에서 탈출해 기나긴 언덕과 계단을 쉼없이 뛰어 내려간다. 빗물은 언덕 위 부촌의 도로를 타고 흘러, 낡은 하수관을 지나 도시의 밑바닥인 반지하 집으로 모여든다. 화장실 변기에서는 검은 오수가 역류하고, 가슴까지 차오른 흙탕물 속에서 가족들은 생존을 위해 허우적댄다. 다음 날 아침, 박 사장의 아내는 “비가 와서 미세먼지가 씻겨나가 상쾌하다”라고 말한다. 이같이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삼키는 거대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비’라는 자연현상이 ‘공간’을 만났을 때 얼마나 잔인한 계급적 사건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 <기생충>이 개봉하고 3년 뒤인 2022년 8월, 영화 속의 악몽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재현되었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밤,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화 속 기택의 가족은 가까스로 탈출하여 체육관으로 대피했지만, 현실의 가족은 그러지 못했다. 물은 순식간에 차올랐고, 엄청난 수압은 현관문을 거대한 벽으로 만들어버렸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방범창이 달린 창문은 구조의 손길을 가로막았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재난의 고통 역시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다.

도시는 거대한 불평등의 지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도시화 과정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지역은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계층이 점유해 왔다. 반면, 침수 등 재난에 취약한 저지대나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 그리고 반지하 같은 주거 형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거처가 되었다. 우리가 우연한 불행으로 여겨 온 재난 피해 중 상당수는, 사실 도시의 사회적, 공간적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본 고에서는 재난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도시 공간에서의 불평등을 조명한다. 먼저 우리나라 법에서 정의하는 재난의 개념을 살펴본 뒤,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서울 신림동 반지하 참사, 그리고 비인간 동물의 재난 사례를 통해 자연현상이 어떻게 도시 구조의 문제와 결합하여 재난 불평등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안전한 도시를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한다.

2. 재난이란 무엇인가: 법이 정의하는 안전의 경계

우리나라 법에서는 재난을 어떻게 정의하고 대응하고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재난 관리의 최상위법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으로, 2004년 제정 이래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며 현재에 이른다. 「재난안전법」의 제정 배경을 보면,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를 비롯해 대형 인적재난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기존의 재난 관련 제도가 대규모 복합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기존 재난 관련 법령이 다원화되어 법률 간 연계성이 부족해 체계적인 대응이 어려웠고, 자연재해 중심의 틀로 화재, 교통사고, 대형 사회재난 등을 포괄하기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국가 차원의 통합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여론과 국회·정부 내 문제의식이 고조되었고, 이에 2004년에 「재난안전법」이 제정되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재난(災難)’은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법률에서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재난안전법」 제3조에 따르면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며,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된다. 자연재난은 태풍, 홍수, 지진 등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를 의미하며, 사회재난은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화학물질 유출, 환경오염 사고, 감염병 유행, 가축전염병 등처럼 인간의 활동 및 사회 시스템의 결함에서 주로 비롯된 재난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인적재난, 사회적 재난을 구분하였으나, 현재는 이를 통합해 사회재난이라 일컬으며 자연재난이 아닌 대부분의 인위적·사회 구조적 재난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한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난의 정의는 확대되어 왔다. 2004년 「재난안전법」 제정 당시에는 자연재난은 태풍, 홍수 등 10개로 정의했지만, 법 개정을 거치며 최근에는 17개까지 확대되었다. 특히, 폭염과 한파는 자연재난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2018년 법 개정을 통해 재난으로 포함되었다. 과거에는 재난을 ‘때려 부수고 무너지는’ 물리적 파괴를 중심으로 정의했지만, 최근에는 서서히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후성 재난으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사회재난도 그 범위가 확대되어 왔는데, 초기에는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화생방사고, 환경오염사고 등 중심이었으나, 대형 인파사고, 감염병 유행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재난”과 같은 포괄 조항을 두어, 법률이 열거하지 않은 새로운 위험도 행정적으로 재난의 범주에 편입할 수 있도록 했다.

<표 1> 재난의 정의와 구분

자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시행 2026. 2. 1.] [법률 제20727호, 2025. 1. 31., 타법개정])

이같이 재난의 정의가 확장되어 온 원인으로 기후 변화, 사회 구조의 복잡화 등으로 재난의 형태가 다변화되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한파, 국지성 호우 등 과거에는 비교적 비중이 낮은 위험요인들의 영향이 커졌고, 이로 인해 자연재난의 발생 양상이 변화하게 되었다. 한편, 대도시화, 고밀도 개발, 대형 시설과 교통수단의 확대,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이벤트 등으로 인해 사회재난의 형태도 복잡해졌는데, 이를 단순한 사고가 아닌 재난으로 규정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대두되었다. 한편, 성수대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세월호 참사, 감염병 유행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대형재난들을 경험하면서 재난의 정의와 열거 항목이 보강되어 왔다.

3.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뉴올리언스와 서울, 그리고 비인간 동물들

비판지리학자 닐 스미스(Neil Smith)는 2006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를 목격한 뒤 “자연재해란 존재하지 않는다(There’s No Such Thing as a Natural Disaster)”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그는 환경지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재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 언급하며, 재난을 단순히 자연의 우발적인 습격으로 보지 않았다. 태풍의 경로와 강우량은 자연의 영역이지만, 제방이 어디서 무너지는지, 누가 대피 정보를 듣지 못하는지, 그리고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는지는 철저히 사회적 셈법(social calculus)의 결과물로 설명한다. 또한 그는 다음에 소개할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설명하였다.

1)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피하라”는 말이 누구에게는 불가능할 때1)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발생과 피해 등 관련 내용은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NHC)의 공식 보고서 Tropical Cyclone Report: Hurricane Katrina(Knabb et al., 2023)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2005년 8월 29일, 시속 280km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상륙 당시 카트리나는 5등급에서 3등급으로 약화된 상태였지만, 5등급 시기 형성된 거대한 파도와 넓은 폭풍 반경이 결합하여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폭풍 해일을 일으켰다. 카트리나는 먼저 미시시피 해안을 덮쳤는데, 세인트루이스 베이를 중심으로 폭약 32km 구간에 7.3~8.5m 높이의 해일이 들이닥쳤다. 2층 건물 높이에 맞먹는 물벽이 덮친 미시시피 해안가의 건물들은 기초만 남기고 완전히 쓸려 나갔다. 뉴올리언스는 북부에 위치한 폰차트레인 호수의 수위가 급상승하면서 도시의 제방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하며 피해를 입었다. 인더스트리얼 운하, 17번가 운하, 런던 애비뉴 운하 등의 제방과 방파제가 차례로 붕괴했고, 물이 시가지로 쏟아지며 도시의 약 80%가 침수되었다.

카트리나로 인한 총사망자는 약 1,392명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1928년 이후 미국 본토를 강타한 허리케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 재난으로 기록된다. 이 중 직접 사망자는 520명으로, 루이지애나에서 341명, 미시시피에서 172명이 목숨을 잃었다. 루이지애나의 경우 사망자 대다수가 60세 이상의 고령자였으며, 광범위한 침수로 인한 익사가 주된 사인이었다. 간접 사망자는 565명에 달했다. 이들은 재난 스트레스나 의료 공백으로 인한 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숨졌다.

카트리나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재산 피해를 낸 허리케인으로 기록되는 만큼, 경제적 피해 역시 천문학적 수준이었다. 총피해액은 2005년 기준 1,250억 달러, 2022년 물가로 환산하면 1,86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40조 원에 달한다. 멕시코만의 석유시설이 타격을 입으면서 미국의 석유 정제 능력이 마비되었고, 해안가 카지노와 관광 산업은 초토화되었다. 약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뉴올리언스의 인구 구조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카트리나는 43개의 토네이도까지 동반하며 2차 피해를 발생시켰다. 조지아주에서는 8월 하루 최다 토네이도 발생 기록을 경신했다.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일부 지역에는 집중 호우가 쏟아져 이미 물에 잠긴 도시의 침수 피해를 가중시켰다.

카트리나는 광범위한 지역에 들이닥쳤지만, 그 피해는 흑인과 빈곤층에 집중되었다. 뉴올리언스는 인종과 계층에 따라 공간적으로 분리된 도시였다(Campanella, R., 2006). 문제는 이 공간적 분리가 곧 위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흑인과 빈곤층은 대부분 침수 위험이 큰 저지대에 거주했고, 제방이 무너지자 피해가 집중되었다. 침수 피해 지역 거주자의 75%가 흑인이었고, 29.2%가 빈곤층, 52.8%가 임대주택 거주자였다. 침수 지역의 평균 소득은 3만 8,263달러로, 비침수 지역의 5만 5,300달러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반면 백인 중상류층이 거주하는 고지대는 침수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동현, 2015).

<그림 1>은 뉴올리언스의 침수 피해 집중 지역과 흑인 거주비율을 중첩하여 나타낸 지도이다. 하늘색 빗금으로 표시된 지역은 카트리나로 인한 홍수 피해 지역을 나타낸 것으로, 폰차트레인 호수와 인접한 지역에 넓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아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흑인 거주비율이 50% 이하인 지역이며, 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흑인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을 의미하며 짙게 표현될수록 흑인 거주비율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를 보면, 흑인 거주비율이 80% 이상인 지역들이 침수 피해를 입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 역시 재난 불평등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침수 피해 지역 거주자의 58%가 흑인과 소수인종이었는데, 이들은 대도시권 전체 인구의 45%에 불과했다. 뉴올리언스 시내로 범위를 좁히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침수 지역 거주자의 80%가 흑인과 소수인종이었다. 소득 격차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는데, 침수 지역 주민들은 고지대 거주자에 비해 훨씬 가난했고, 극빈층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Brooking Institution, 2005). 거주지의 고도는 곧 계급이었고, 계급이 곧 생존 확률이었다.

<그림 1> 침수 피해 집중 지역의 인종 구성

자료: Brookings Institution(2005: 18)

또한, 카트리나 참사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문제는 정보와 실행 능력 사이의 간극이었다. TV와 라디오, 인터넷을 통해 대피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졌지만 이 정보는 자가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했다. 200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가구의 3분의 1은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았다. 이는 전국 평균 10%와 비교되는 수치이며, 인종별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흑인 가구의 35%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반면 백인 가구의 자가용 미소유 비율은 15%에 불과했다(Samuels, R., 2005). 부유층은 자가용을 이용해 빠르게 대피할 수 있었고, 신용카드와 은행 계좌를 통해 비상 시 숙소와 물품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재건축을 위한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었다(Smith, N., 2006).

재난 이후의 불평등도 지속되었다. 최후의 피난처였던 슈퍼돔은 생지옥이었다. 식수와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위생 시설은 붕괴되어 오물이 넘쳐났다. 정부는 그들을 보호하는 대신 방치했다(BBC News, 2005.9.2.). 더 충격적인 것은 미디어의 프레임이었다. 생존을 위해 마트에서 식료품을 챙기는 모습을 두고, 백인이 빵을 들고 가는 사진에는 ‘음식을 발견했다’고 썼지만, 흑인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진에는 ‘가게를 약탈했다’고 보도했다(KBS뉴스, 2005.9.5.). 제도적 지원과 자본이 집중된 부유층 지역은 빠르게 도시의 기능을 회복했으나, 저소득층 지역은 복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며 폐허로 남았다. 결국 가난한 원주민들이 도시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뉴올리언스의 인구 구조와 계층 지도가 바뀌는 ‘재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2) 서울 신림동 반지하 참사: 집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되는 순간

2022년 8월 8일,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는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폭우가 쏟아졌다. 특히 동작구와 관악구 일대에는 시간당 141.5mm라는 기록적인 물폭탄이 떨어졌다. 이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주거 빈곤과 불평등이 기후 위기와 만나 어떻게 ‘사회적 참사’로 귀결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중심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가 있었다.

이날 쏟아진 폭우로 도림천이 범람하고 하수관이 역류하면서 순식간에 거리와 주택가가 물에 잠겼다.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언니와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10대 딸 등 일가족 3명은 차오르는 물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다. 수압으로 인해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고, 유일한 탈출구였던 창문마저 방범창에 가로막혀 있었다(한겨레, 2022.8.9.). 이들은 침수 신고를 했지만 동시다발적인 폭우 피해로 구조의 손길은 제때 닿지 못했다.

카트리나 참사가 흑인과 빈곤층이 거주하는 저지대에 피해를 집중시켰듯, 2022년 서울의 폭우 역시 가장 낮은 곳, 반지하에 사는 이들에게 가혹했다. 반지하는 한국의 압축적 도시화 과정에서 탄생한 기형적인 주거 형태로, 영화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에 빈곤의 상징으로 알려진 바 있다(BBC News, 2022.8.10.).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는 약 32만 가구에 달하며, 그중 96%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는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 거주 비율이 높은 자치구 중 하나이다(한국도시연구소, 2022).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도시 빈민, 청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이곳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림 2> 2022년 8월 8일~9일 24시간 지속 최대 강우량

자료: 서울연구원(2022.8.29.)

서울연구원(2022.9.13)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의 스무 가구 중 한 가구(5%, 약 20만 가구)는 지하 및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특히 관악구, 강북구, 중랑구 순으로 밀집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특정 지역의 주거 취약성이 재난 시 피해 격차로 직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 2>에서 확인되듯 관악구 일대에 집중된 기록적인 강우량과 높은 반지하 거주 비율을 동시에 고려하면 이는 예고된 참사였다.

<그림 3> 서울시 지하 반지하 주택 밀집지역

자료: 서울연구원(2022.9.13.)

닐 스미스가 지적한 ‘사회적 셈법’은 서울에서도 작동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와 빌딩들 역시 침수 피해를 입었으나, 이는 주로 재산 피해에 그쳤다. 반면 생명을 위협받는 피해는 도시의 하부 구조, 즉 반지하 거주민들에게 집중되었다. 지상의 물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들었지만, 그 낮은 곳에 누가 살고 있었는가는 철저히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한 것이었다. 침수 위험이 높은 저지대 반지하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계층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생존의 대가였다.

참사 직후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퇴출’을 선언하며 매입 임대주택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으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정책은 거주민들에게 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기보다는, 갈 곳 없는 이들을 더 외곽으로 내몰거나, 오히려 남은 반지하 주택의 월세를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경향신문, 2022.8.14.). 동아일보(2023.6.10.)에 따르면, 참사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위험의 공간은 여전히 가난한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로 남아있었다. 동아일보가 폭우 피해가 극심했던 관악·동작구 일대 반지하 가구를 추적 조사한 결과, 대상의 87%에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가족 사망 사고가 발생한 주택 바로 옆 건물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일부는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와 서울시가 반지하 퇴출을 선언하며 주거 상향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은 이를 빛 좋은 개살구라 토로한다. 지상층으로 이주할 경우 월세 부담이 폭증하고, 지원되는 공공임대주택은 생활권과 너무 멀어 생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안전은 구매할 수 없는 사치였다.

신림동 반지하 참사는 “자연재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한국 사회에 극명하게 입증했다. 기록적인 폭우는 방아쇠였을 뿐, 참사의 본질은 주거 취약계층을 도시의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구조에 있었다. 결국 기후 위기 시대의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 않으며,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따라 가장 취약한 곳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파괴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3) 비인간 동물의 재난: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한 존재들

우리는 여러 문제를 마주할 때 인간이라는 경계 안에서만 사고한다. 하지만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취약한 존재, 인간보다 더 낮은 곳에서 참혹함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들은 바로 ‘비인간 동물 (Non-human Animals)'2)인간 역시 생물학적으로 동물에 속함을 전제하고, 인간과 동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를 지양한다는 관점에서 ‘비인간 동물 (Non-human animal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들이다.

앞서 소개한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지옥이었다. 당시 구조 당국은 동물은 구조 헬기와 버스에 탈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 결과, 반려동물과 함께 이동하려던 이재민의 구조가 거부되거나, 수많은 이재민이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버리고 갈 수 없다며 대피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남겨진 동물들은 빈집에 묶이거나 갇힌 채 익사하거나 굶어 죽었다. 미국은 동물의 안전이 곧 인간의 안전과 직결됨을 인식하고, 「반려동물 대피 및 수송법(PETS Act)」을 제정하였다.

2025년 3월, 영남지역을 휩쓴 대형산불은 국내 산불 사고 중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된 사고이자, 우리나라 재난관리체계에서 동물 보호의 공백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화재는 안동, 영덕, 영양 등 영남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강풍을 타고 10일간 지속된 불길은 서울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10만 ha 이상을 태웠다. 재산 피해는 1조 원을 넘어섰고, 180명 이상이 인명 피해를 입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산불로 인해 죽거나 다친 동물은 총 1,994마리에 달하는데, 그중 개 1,662마리, 고양이 1마리, 새 2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산불이 민가와 축사를 덮쳤을 때, 반려동물과 가축을 위한 구조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현행 「재난안전법」과 「재해구호법」은 구호 대상을 오직 ‘사람’으로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김수정, 2025).

진정한 회복탄력적 도시(Resilient City)란 무엇일까? 재난 대응 체계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인간 중심의 대피, 구조, 복구에 집중한다. 하지만 도시 생태계는 인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반려동물, 길고양이, 야생동물까지 포함한 이들 역시 재난 상황에서 극심한 취약성에 노출된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시스템의 회복력은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된다. 동물을 배제한 방재 계획은 도시 생태계의 일부만을 고려한 불완전한 설계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재난 현장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하지 못해 위험을 감수하고 집에 남거나, 동물을 두고 떠난 뒤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재난 앞에서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두 취약함을 공유한다. 물에 갇히고, 불에 쫓기며,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단을 잃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재난 불평등을 논할 때 이들의 생존권까지 포괄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 선택의 문제를 넘어 도시의 온전한 회복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다. 모든 생명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보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회복탄력적 도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포용적 회복력을 향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닐 스미스의 “자연재해는 없다”는 명제를 시작으로, 미국 뉴올리언스의 저지대와 서울의 반지하, 그리고 구조되지 못한 동물들의 사례를 통해 재난 불평등의 실체를 확인했다. 기후 위기 시대의 재난은 물리적 파괴를 넘어,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온 도시 시스템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도시 계획과 방재 정책은 주로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해 왔다. 침수 위험이 높은 지역에 저렴한 주거지를 허용하고, 제한된 예산 안에서 구조 대상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이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재난은 이런 접근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도시의 안전 기준을 효율성에서 형평성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회복탄력적 도시는 단순히 무너진 건물을 빨리 복구하는 것이 아닌, 재난의 충격을 크게 받는 취약계층이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갖춘 도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주거 안전의 재구성이다. 서울 신림동 참사가 보여주었듯, 주거 취약성은 곧 재난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반지하를 없애는 것을 넘어, 저소득층이 안전한 주거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고 주거 상향을 지원하는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주거복지 차원에서 기후 재난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안전은 경제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보 접근성과 이동 수단의 보장이다. 카트리나 사례에서 확인했듯, 재난 정보가 제공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피 정보가 있어도 이를 실행할 수단이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위한 다층적 경보 시스템, 자가용이 없거나 이용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공 대피 교통수단 등 실질적인 대피 역량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셋째, 포용적 회복력(Inclusive Resilience)의 실현이다. 재난 관리에서 포용적 회복력은 장애인, 노인, 여성, 아동, 소수자는 물론 비인간 동물까지 포함한 모든 존재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이들을 재난 대응 체계에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반려동물과 가축은 재난 시 스스로 탈출할 수 없는 절대적 약자이다. 미국이 카트리나 이후 법적 근거를 마련했듯이 우리도 동물을 재난 구조의 대상으로 확대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결국 그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비는 더 자주, 더 강하게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 비가 재앙이 될지,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날씨가 될지는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있다.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할 것인가. ‘도시는 누구에게나 안전한가?’라는 질문에, 이제는 ‘도시는 모두에게 안전해야 한다’고 답할 때다.

각주   [ + ]

1.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발생과 피해 등 관련 내용은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NHC)의 공식 보고서 Tropical Cyclone Report: Hurricane Katrina(Knabb et al., 2023)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2. 인간 역시 생물학적으로 동물에 속함을 전제하고, 인간과 동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를 지양한다는 관점에서 ‘비인간 동물 (Non-human animal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