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포트는 2022년에 펴낸 『회복력과 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찰과 제언』에 실린 신수연의 글입니다. 이 사이트에는 원문의 일부만 게시했습니다. 전체 내용은 하단의 PDF파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명: 신수연. 2022. 「군사시설로 인한 지역의 피해와 갈등, 그리고 회복을 위한 노력」.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엮음. 『회복력과 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찰과 제언』.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221-244쪽.)

군사시설을 바라보는 복합적 시선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9년이 지났지만,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장의 정전상태가 지속 중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대화와 협력의 물꼬가 트였다가도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역학관계로 인해 군사훈련이 재개되고 긴장감이 고조되기 일쑤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고 징병제가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군사기지와 이웃하여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특히 새로운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입지와 절차, 피해를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공공정책 중 특히 국방정책은 대화와 토론, 공론화의 절차 없이 집행되는 경우가 많아 사회갈등의 골이 깊다. 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명분만으로 희생을 감내하던 시기는 진작에 지났다. 주거 환경과 재산권에 대한 인식 변화, 마을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정주 의식, 안보와 평화에 대한 가치관 차이에 더해 외교적 득실까지 군사시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이며 갈등은 첨예해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경기 북부에 몰려있던 주한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재배치되는 과정에 사회적 갈등이 무척 컸다. 농사 짓던 땅을 대규모 군사기지로 제공하도록 강요받은 평택 도두리·대추리 주민들의 저항과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가 더해져 ‘미군기지 확장’에 대한 질문이 사회에 던져졌다. 이는 2003년 이라크 파병 결정과 반전(反戰)운동의 연장선에서 ‘가치’의 대립이기도 했다.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갈등은 반복된다. 새로운 무기체계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도입되면서 그 실효성과 환경피해, 절차에 대한 찬반 입장이 나뉘고, 중국의 비난과 경제적 보복 조치가 취해질 정도로 말이다.

데이비드 바인(David Vine) 교수는 해외에 대규모 기지와 병력을 유지하는 게 평화를 유지하고 미국과 세계를 더 안전하고 안정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반대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1)David Vine. 『기지국가』. 유강은(역). 갈마바람. 2017; Base Nation. 440-441쪽. “미군이 북한의 남한 공격을 억지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군의 한국 주둔 때문에 끝난 적이 없는 전쟁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중략)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 최강의 군대를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국의 군사력 – 과 핵 역량 – 을 증강하는 게 타당하다”라고 말이다. 대규모기지 건설과 운영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환경파괴, 긴장의 격화와 그로 인한 군비 증강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실체’로 확인되지만,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효과를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미군기지라는 치외법권의 공간 경계에서 ‘한미동맹’은 자주 논쟁이 된다.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저항과 문제 제기가 커지면 일시적으로 ‘할 말은하는 동맹 관계’가 논의되다가도, 군사적 긴장이 격화될 때는 ‘굳건한 한미동맹’만이 원칙이 된다. 그 사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절대다수가 바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이는 국방, 외교 정책의 방향에 대한 문제이자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안이며, 그동안 소수의 국방 전문가와 정책결정자가 독점해온 영역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로 군사시설이 새로 들어서거나 확대된 지역 내 갈등 관리와 회복은 후순위 과제로 밀리거나 보상 문제로 만 환원되었다. 

최근 몇 년간 폭염, 폭우, 산불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와 팬데믹 상황을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겪고 있다. 국가안보의 범주 변화, 사회적 안전망 구축, 정부의 대처 역량 강화가 요구되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 밀려난 해묵은 과제를 모색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군사시설로 인한 여러 지역의 갈등 사례를 확인하고, 각 지역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군사시설로 인한 갈등 

군사시설이 이전되거나 새롭게 건설될 때, 이미 사용 중인 곳과 반환되 는 곳까지 다양한 형태의 피해와 갈등이 존재한다. 국내법이 직접 적용되지 않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소파)의 불평등한 내용으로 인해 주민들의 피해구제와 갈등 해소에 특히 어려움을 겪는 미군 주둔지역이 대부분이다. 

미군기지 이전사업 – 평택 

한국 정부가 미군에게 기지, 시설, 군사훈련 등에 필요한 땅을 공여해 미군이 사용권을 가진 땅을 주한미군 공여구역이라고 한다. 주한미군 공여구역은 경기도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전국 미군기지 93개소 면적의 87%가 경기도에 있으며, 미군기지 이전사업으로 반환(예정 포함)될 공여구역 면적의 96%도 경기도에 있다. 미군에게 지속적으로 공여되는 면적은 총 6,252만㎡이며 이 중 43%가 평택에 위치한다. 

미군기지 이전사업 (ⓒ 녹색연합)

지난 2003년, 전국에 흩어진 주한미군기지를 대한민국 중부(평택-오산)와 남부(대구-부산) 2개의 거점에 재배치하는 계획이 추진됐다. 미2사단과 용산기지 이전을 위해 새로운 부지를 확보해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이 있었고, 국방부는 2004년부터 평택 지역 부지 매입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들은 평택 팽성읍 일대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대책위원회는 발족선언문에서 1952년 전쟁 중에 문전옥답을 미군기지로 빼앗기고 쫓겨나 미군기지 주변에 흩어져 살게 된 억울함, 미군 범죄와 비행기 소음과 진동, 오염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온 점을 거론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진행되는 팽성의 미군기지 확장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것, 그동안 입은 각종 피해에 대한 철저한 대책과 보상을 마련할 것”2)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의 불씨 26년의 기록』. 민중의소리. 2018. 174쪽 등을 촉구했다. 미군기지 확장계획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아 토지매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자, 국방부는 강제토지수용절차를 밟았다. 이에 반대하는 격렬한 집회와 소송이 벌어지고,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연행 기소되었으며, 외부에서 마을을 지키는 지킴이들이 모여들었다. 2006년 5월 ‘여명의 황새울’ 작전명으로 행정대집행이 단행되고, 마지막까지 남은 44가구주민들은 결국 이주하게 된다. 당초 502만㎡ 정도의 규모였던 평택 미군기지(K-6)는 미군기지 이전사업으로 인해 주변 부지가 추가로 수용되어 현재 약 1,465만㎡ 규모로 확장됐다. 여의도 면적(290만m²)의 다섯 배 정도로 단일 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가 되었다.

평택미군기지 K-6 (ⓒ 녹색연합)

미군기지가 집중 이전되면서 평택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평택지원특별법)’이 제정되어 초대형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대규모 공장과 산업단지 물량이 배정되었다. 2010년 41만 명이던 인구가 2020년 53만 명으로 늘어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로 꼽힌다. 미군과 미군 가족, 군무원 등도 빠르게 증가해 46,000명이 평택에 거주(2020년 4월 기준)하며,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마무리되면 최종 56,000명이 머물 예정이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평택의 모습 속에 과거 강제로 토지를 빼앗긴 주민들과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던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민들이 돈을 모아 ‘대추리 주민 역사관’을 짓고, 지역 청소년들이 대추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엮은 책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를 발행하였다. 이주할 때 주민들의 핵심 요구사항이자 정부 역시 합의했던 마을 이름 ‘대추리 명칭사용’ 이행을 요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군기지가 집중되면서 지역사회의 변화와 피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기록하며, 평택시와 평택시의회, 정부에 관련 제도와 정책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농사 짓던 땅에 대한 애착과 정주의식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격렬한 갈등 끝에 건설된 미군기지에 대한 사회적 과제를 모색하고 제안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 강정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유치 결정과 추진 과정에서 심각한 공동체 분열이 발생하였다. 국방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공론화는 부재했다. 강정마을회 임시총회(2007년 4월)에서 마을주민 1,900여 명 중 87명이 기습적으로 제주 해군기지 유치를결정하고, 국방부가 강정마을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지역으로 최종 결정(2007년 6월)한다.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며 마을회에서는 임시총회를 열어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해군기지 건설 찬반 주민투표(총 725명 중 반대 680명, 찬성 36명, 무효 9명)를 통해 해군기지 유치 반대를 강정마을회의 입장으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국방부와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면서 긴 갈등이 시작된다. “2007년부터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다 체포되거나 연행된 사람은 모두 690여 명, 공사착수 시점인 2011년부터 2년간 전체의 72%가 연행됐고 이 기간 동원된 경찰 수만 19,600여 명”3)연합뉴스. 2016-5-29. 제주 강정마을 반대 체포·연행 697명…과잉진압 결론.에 달한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조사위원회의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유치 및 건설과정에서 받은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매우 심각하고, 찬반갈등으로 마을 공동체가 붕괴 위기에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해군기지 유치와 결정 과정이 주민의 의견을 배제한 비민주적 방식이었고, 국가기관은 기지 반대 측 주민과 활동가에 대한 폭행, 폭언, 종교행사 방해 등 인권침해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

강정마을회에서 공동체 회복사업 추진을 결정하고, 제주도 또한 ‘제주특별자치도 강정지역 주민 공동체 회복 지원 조례’ 가 제정되는 등의 회복을 위한 움직임(2017년)이 있었으나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에서 국제관함식을 추진하고 강정마을회의 동의를 요청(2018년)하면서 이에 대한 찬반 대립, 향약상 주민자격 변경까지 갈등이 재점화되었다. 또한 공동체 회복 사업으로 “강정마을에 총 9,625억 원(국비 5,787억·지방비 1,813억·민자2,025억) 규모의 39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4하였으나 공동체 회복사업과 관련 없는 개발 사업이 포함되면서 배분과 특혜 논란 등 새로운 갈등도초래되었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 주민 당사자 등 각 주체가 특정 사건과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후 공동체 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과 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참고문헌   [ + ]

1. David Vine. 『기지국가』. 유강은(역). 갈마바람. 2017; Base Nation. 440-441쪽.
2.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의 불씨 26년의 기록』. 민중의소리. 2018. 174쪽
3. 연합뉴스. 2016-5-29. 제주 강정마을 반대 체포·연행 697명…과잉진압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