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제연구소 오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집단면역’ 형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희망도 잠깐.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삶’으로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K방역의 성공 요인과 문제의식을 거칠게나마 간략하게 제시해보고자 한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 다비드 칼 리가 쓰고 마르코 모사가 그린 그림책 ‘나도 가족일까?’에서 부모가 보리스에게 보낸 쪽지에 적혀 있는 글이다. 아이가 없는 부부는 늪에서 우연히 물고기와 인간의 몸을 반씩 지닌 아기를 발견하게 되고 아이(보리스)의 부모가 된다. 하지만 보리스는 인간의 몸과 다른 자신을 보며 자신과 닮은 누군가를 찾아 늪으로 떠난다. 그곳에서도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슬픔에 빠진 순간, 늪의 바닥에 있는 보리스의 부모가 보낸 수많은 빈병 안의 쪽지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쪽지에 새겨진 위의 글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된다. 닮지도 않고 혈연관계도 아니며, 심지어 종(種)도 다른 보리스가 어디에 있든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난 14년 동안 성숙한 민주주의와 건강한 지방자치 구현을 위한 노력으로 한국형 매니페스토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에 따른 현명하고도 냉철한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 사례가 공유, 학습, 확산되길 바라면서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매년 개최하였다.

11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대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동영상 발표와 함께 144개 기초지자체에서 353사례를 공모하여 분야별 시·군·구별로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선정, 발표하였다. 본 도서는 이를 바탕으로 분야별 시·군·구별 우수사례 35개를 선정해 보았다. 또한 분야별 심사 기준을 어떤 가치로 진행했는지에 대한 강평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실마리를 함께 찾아보고자 노력하였다.

매니페스토운동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담대한 여정이다. 인류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변화는 결국 인간다움으로의 인식변화로 발전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활용하는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서 새로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 사고와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변화는 도전이다. 미래사회를 향한 담대한 여정은 막연한 두려움이 미지에 대한 설렘으로 변화하는 사직이어야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 본부는 새로운 변화의 중심선상에서 지방정부의 새로운 변화를 향한 담대한 도전을 경진대회라는 형식의 축제로써 응원하고자 한다. 그 여정의 끝에 보다 나은 세상, 보다 인간다운 삶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1988년 버마 민주화 항쟁 때 우리는 88년 올림픽에 취해 미얀마의 상흔과 노고를 오롯이 품어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미얀마 민중들은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모국으로 부르며 자유에 대한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잔인한 폭력 앞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는 미얀마 시민들은 오늘도 세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우리 이웃인 미얀마에 지지와 성원을 아낌없이 보내자. 언론의 관심이 사그라지더라도 미얀마를 잊지 말자. 그것이 미얀마의 봄을 앞당기는 희망일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에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5.7%이고 2025년에는 20.3%에 이르러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9년 기준 기대수명은 83.3년으로 2005년에 비해 약 5년 늘었다. 문제는 건강수명이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에서 유병기간을 제외한 기간으로 2018년 평균 64.4년이다. 대략 17년간 질병, 부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기대수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를 줄이는 것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놀이의 상실은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폭력과 놀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양산했다. 많은 청소년이 타인을 상대로 한 패드립과 혐오발언, 집단 괴롭힘, 불법촬영과 디지털 성범죄 등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싸 문화, 놀이 문화로 소비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 불법촬영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19세 이하 청소년의 디지털 성범죄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경찰청 조사를 통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수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마치 그러한 행위가 용인된 것처럼 죄책감 없이 급속도로 퍼져갔다. 놀이 또한 사회적인 관계 속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망각한 탓이다.

놀이에 있어 경쟁, 인정욕구와 성취감은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하지만 천대받은 놀이는 잘못된 인정욕구와 성취감을 배태했고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순식간에 효율적으로 응답, 인정,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놀이의 배신을 더욱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노르베르트 볼츠가 <놀이하는 인간>에서 생산과 소비의 시대를 넘어 21세기는 놀이의 시대가 되리라 전망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20세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경기도는 긴급 생계 위기에 처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자격 조건 없이 먹거리를 가져갈 수 있는 `경기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를 설치했다. 이재명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모두 내려놓고 주저 말고 찾아와 달라”고 했다. 절박한 이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신원확인과 재산조사 등의 진입장벽도 없앴다. 약간의 악용 부작용이 있더라도 예산 부족도 지자체장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가 무산됐다. 2011년부터 이해충돌방지법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법안 발의는 계속 이어졌으나 10년 넘게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것만큼 국회에 대한 불신이 더욱 공고화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된다.

거짓과 증오는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2020년 미국 대선은 거짓과 증오로 얼룩졌다. 그 이유로 편향성과 배타성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미국의 극단적 일방주의와 나는 옳고 상대방은 모두 틀렸다는 배타성은 미국의 장점인 다양성을 점점 더 빨리 잃게 했다. 서로 혐오하고 증오하였으며, 무차별적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 사회도 성별, 종교, 인종 등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고, 묻지마 증오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거짓 주장과 혐오 발언으로 증오를 선동하기까지 한다. 정파적 혹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거짓 주장들은 편향성을 강화한다. 그 상황에서 진실과 본질은 증발해 버리고 만다. 또 문제는 정치 1번가인 여의도다.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의 평가는 한 마디로 ‘격투장으로 전락한 정쟁국감’이었다. 여야 모두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나뉘어 격투를 벌였다. 상대방을 도발해 분노를 유발하는 어그로(aggro)만 있을 뿐, 국민에게 내 놓은 국감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정쟁은 입법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일하는 국회를 약속했지만 지난 5개월간 국회가 보여준 모습은 집단 퇴장, 고성과 막말의 장이었다. 언론들은 여전히 편향된 보도를 이어갔고 SNS에서는 정치적 증오와 극단적 주장이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