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명: 이재영. 2022. 「장애의 관점에서 본 도시 탄생의 함의와 도시철학」.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엮음. 『회복력과 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찰과 제언』.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197-219쪽.)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류 최초의 문명 그리고 인류 최초의 도시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라는 말은 중간 지점을 뜻하는 메소(Meso)와 강을 뜻하는 포타모스(potamos)라는 고대(古代) 그리스어가 합쳐진 단어로 본래 “강들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티그리스강와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비옥한 곡창지대로서 최초의 도시(都市)들을 낳은 인류 최초의 문명(文明)의 발상지이다. 사전적으로 문명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기술적 발전을 의미한다. 도시는 그러한 문명의 실체적 구현으로서 우리 최초의 문명이 인류 최초의 도시를 낳았다는 것은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가 출현한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에 사는 도시인들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무엇을 입고, 먹고, 어디에서 살 것인가. 도시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도시에 적합한 가족관계는 무엇이며, 그것은 또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 정치체제는 도시에 맞춰 어떻게 발전하여왔으며, 앞으로 과학기술은 도시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의식주(衣食住)의 문제, 자본주의의 등장과, 가족관계의 변천, 정치, 교육 등 인류는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도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인류문명이 지속하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도시 탄생의 함의(含意)를 고찰하는 것은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힘에만 그 의미가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가 어떻게 탄생하여 발전해왔는가의 물음은 왜 도시가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되었는가를 물음이며, 도시가 발생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자, 그렇다면 도시는 어떻게 발전했어야 했는가를 묻는 성찰의 시발(始發)이다. 도시가 사실 문명의 체화(體化)라는 점을 기억한다면,위의 물음은 바로 인류 문명, 그리고 인간 자체에 던지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화두(話頭)이기도 하다.
이 글은 특히 장애와 관련하여 도시 탄생과 그 발전이 갖는 함의를 알아보고 공시적(共時的)으로는 대한민국의 도시의 장애 관련 법제와 국제법규를 비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래를 그리는 학문들이 통상적으로 마주치는, 장애와 관련된 논쟁이 흔하게 조우하게 되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 효율-생산성과 복지의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도시 – 욕망의 집합소
인류 최초의 도시는 기원전 2100년경에 존재했던 우루크로 알려져 있지만, 최초의 도시하면 우리는 흔히 성경에 나오는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 바빌론(Babylon) 같은 도시를 떠올린다. 성경에 따르면 신은 소돔을 파괴하기 위하여 두 명의 천사를 내려보내는데 롯(Lot)은 그 천사들을 자신의 집에 받아들인다. 이때 군중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에게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겁박하자 천사들은 그 군중들을 모두 눈멀게 만들었다.1)성경 창세기 18:23.
성경은 신이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한 것은 여기에 살던 도시인들의 죄가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사람들이 지었다는 죄는 성적인 방탕함, 주로 동성애다. 동성애를 경멸조로 일컫는 영어 소도마이트(Sodomite)가 소돔(Sodom)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을 정도로 서양 기독교 문화는 도시와 성적 죄악을 긴밀하게 연관 지어 인식하고 있다. 바빌론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점은 좀 더 두드러진다. 최근에 고고학계에서 바빌로니아 왕국 도시들의 유적의 발굴이 점차 진전되면서 바빌론의 규모, 형태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시 바빌론은 유프라테스강에 걸쳐있었는데 성경에 따르면 바빌론은 노아의 자손들이 지은 바벨탑의 자리에 세운 것으로서 여러 가지 다른 언어가 그 도시 내에서 사용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성경에서 바빌론은 각지에서 모인 인간 욕망의 집합소를 상징하고 있으며, 역시 그 성적인 문란함이 멸망의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위 도시들의 공통된 특징은 욕망이다. 인간의 거대한 욕망(慾望). 세상에서 인간이 이룩한 거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도시 탄생의 근본적 요인이다. 손쉽게 음식을 구하려는 욕망, 성교하려는 욕망, 다른 이들과 함께 안전한 무리를 이루려는 욕망, 가족을 이루려는 욕망, 권력을 가지려는 욕망. 도시는 욕망을 효율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하여 모인 인간들에 의해 탄생하였고, 욕망의 만족을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속성은 도시 작동의 원천이 되는 힘으로 작용한다. 도시에 모인 인간들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효율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며, 이 같은 효율성의 요구는 인적, 물적으로 집적된 공간인 도시에서의 지식 교류와 연구를 통한 과학의 발달, 혁신의 출현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성으로 표현되고 특징지어진다.
도시의 탄생과 멸망 – 효율성의 역설
집적된 인구는 경제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해 시장을 기능하게 하며, 정치적으로는 다양한 이해를 조율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요청한다.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정치, 경제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역사에 등장하게 한 것도 바로 도시의 효율성 덕분이었다. 플라톤의 철인통치와 같은 주장이 현실에 반영되지 못하고 철학적 구호에 그치고 만것은 자신들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도시인들의 욕망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정치인들을 선택하려는 도시인들의 욕망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에서 자본주의를 선택하게 하였고, 효율성이라는 도시의 속성을 읽지 못한 공산주의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폴리스(Polis: 그리스어로 도시를 의미한다) 중 대표적인 도시국가로 꼽히는 아테네를 보면 아테네 출신 부모를 두고 아테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테네 순수 태생의 인구 비율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기원전 6세기경 당시 아테네의 눈부신 발전은 아테네 시민들만의 성취가 아닌 고대의 발달한 선진문화를 향유하고 있던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다양한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개방성이 그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도시의 성취이기도 했다. 철학 이외에도 다양한 학문에서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민자 출신이었는데, 그가 나중에 반역자로 몰려 아테네를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사랑하는 아테네가 소크라테스를 죽이는 죄를 짓고, 또 한 명의 위대한 철학자를 죽이는 죄를 짓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야화는 유명하다.
그리스 도시들의 개방성은 소크라테스, 플라톤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융성했던 철학의 기반이 되었으며, 문학과 음악 등 찬란한예술을 꽃피우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가 현대 서양문화의 요람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고대 지중해에는 고래들로 가득해서 어디서나 지중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고래들을 흔하게 볼 수있었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어시장이 형성되었던 항구에서 어부가 고래를 손질하는 것을 보고, 고래의 해부학적 구조를 특이하게 여겨 고래는 포유류와 어류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적어두기도 하였다. 고래가 포유류에 속한다는 것은 현대인들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수천 년 전 이 같은 과학적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험과 지식, 관념의 역동적인 교류가 있었던 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종국적으로 그 번영의 기반이 되었던 외국인의 경제적, 정치적 입지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치달았다는 점이다. 아테네에서 여성이나 노동자의 참정권은 끝내 인정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는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등 일정한 계층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도시 내 특권층을 형성했다. 왜 도시는 도시의 영화를 가능하게 했던 장점인 개방성을 스스로 버리게 된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잠시 도시에 있어서 법이 갖는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 1. | ↑ | 성경 창세기 18:23. |